2월 서울코믹월드 녹적 소설본 <을의 연애~philophobia~> 수량조사합니다!
<을의 연애~philophobia~>
(philophobia: 사랑 등 연애적 감정에 대한 비이성적 두려움, 또는 그러한 두려움을 가진 자.)
미도리마 신타로 x 아카시 세이쥬로
64p / 5,500원
15세 이상의 구매 및 열람을 권장합니다.
행사장에서 따로 신분증 검사는 하지 않습니다.
*센티넬버스 AU입니다. 미도리마가 가이드, 아카시가 센티넬입니다.
*아카시가 필로포비아(연애 혐오증)로 자연스레 녹→적 전제인데 딱히 그런 분위기인 것만도 아닙니다.
*약간의 녹고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정확히는 녹←고에 가깝습니다. 타카오의 대접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이는 이후 궁고편으로 이어지기 위한 설정입니다. 저 타카오 좋아해요8ㅁ8 양해 부탁드립니다)
*미도리마x모브 여캐 묘사가 있습니다. 스토리 상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성인이었을 때의 배경과 중~고등학교 시절의 배경을 넘나듭니다.
*<쿠로코의 농구> 본편 윈터컵 결승전에서 라쿠잔 고교가 우승했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미도리마의 감정을 받아줄 수는 없으면서 자신의 평온을 위해 미도리마를 붙들어두는 아카시의 이야기입니다.
아카시 편 / 미도리마 편으로 파트가 나뉩니다. 실질적인 문제편과 해결편입니다.
분위기가 밝지 않습니다. 정말 전혀 밝지 않습니다... 정말로...
☆샘플★
삐삐삐삐삐…….
머리맡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아카시 세이쥬로는 잠에서 깨어났다. 허억. 숨을 삼킨 아카시는 이마를 손으로 쓸어넘겼다. 땀이 비 오듯 흘러 파자마도 흠뻑 젖어 있었다. 정말 끔찍한 꿈을 꾸었다. 누워 있던 침대에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옆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아카시가 쓰고 있는 침대는 킹사이즈로, 성인 남자 두 사람이서도 넉넉하게 잘 수 있는 크기이다. 그러므로 아카시는 이 침대를 결코 혼자서는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본디 그 자리에 누워서 자고 있었어야 할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 새벽에도 돌아오지 않은 건가…….’
땀으로 젖은 머리를 다시 쓸어 넘긴 뒤 아카시는 침대 밖으로 나왔다. 흐트러진 이부자리는 정리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 다시 침대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오늘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아니, 정확히는 갈 수가 없다. 그의 냄새와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이 공간이라야만 겨우겨우 이성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갈아입을 옷을 들고서 목욕탕 안으로 발을 들였다. 세면대 옆에는 칫솔과 함께 면도칼이 놓여 있었다. 순간 그것을 집어 들어 손목을 그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뒤처리가 곤란할 거라는 상식적인 판단과 함께 아카시는 면도칼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렸다. 따뜻한 물이 쏟아져 내리는 샤워기 밑에 서서 몸의 땀을 모조리 쓸어내린 뒤에야 손목을 긋지 않은 건 역시 잘한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포도 향의 바디 워시로 몸만 간단히 닦아낸 뒤 아카시는 욕실을 나왔다. 냉장고를 열어 보았으나 사흘 넘게 식재료를 사두지 않은 터라 냉장고 안에는 유통기한이 언제인지도 알 수 없는 계란과, 우유 한 병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 찬장에는 식빵이 있었기에 아카시는 토스트기의 전원을 올렸다. 식빵 두 장을 삼킨 채 빨갛게 달아오르는 전선을 보면서, 그 안에 자신의 손을 넣는 상상을 했다. 토스트기의 화력으로는 타죽을 수 없겠지. 기껏해야 손을 못 쓰게 될 정도의 화상을 입는 게 전부일 거다. 그런 거로는 의미 없어. 아카시는 얌전히 식빵이 튀어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토스트기에서 시선을 뗐다.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계란을 까 넣었다. 계란 표면이 달군 기름에 닿아 자글자글 익는 소리가 들렸다. 불에 휩싸여 죽는다면 매우 뜨겁고 또 아플 것이다. 아니야, 이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야.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레인지의 불을 낮추었다. 투명했던 계란 흰자가 겨우‘흰자’에 맞는 색을 띠었을 때 철컹, 하는 소리와 적당히 익은 빵이 튀어 올라 왔다. 계란 프라이와 식빵을 나란히 접시에 담고 냉장고 안에서 사과 잼을 꺼냈다. 버터나이프 대신 과도로 빵 위에 잼을 바르다가, 손이 어긋나 과도 날이 손목을 그어버리는 상상을 했다. 피가 뿜어 나와 빵을 붉게 적시고 테이블로 떨어져 접시 위에 가득 고이는 모습까지 떠올리고 나서, 다시 못할 짓이다, 라고 생각했다. 피에 젖은 빵은 먹을 수 없다. 아카시는 얌전히 식빵 위에 잼을 꼼꼼히 바른 뒤 과도를 내려놓았다. 역시 사흘째는 위험했던 모양이다. 무슨 행동을 해도 죽는 것 외의 상상이 불가능하다니.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또 베어 물어 꾸역꾸역 목구멍 너머로 넘겼다. 그다지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기에 두 장의 식빵을 모두 먹어치우는 것은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해냈다. 이대로 목이 막혀 죽어도 곤란하겠지. 얼마 남지 않은 우유를 단번에 마시고 나서 아카시는 그릇을 아무렇게나 개수대에 던져 놓았다.
다시 잠을 청할까. 하지만 또 그 악몽을 꾼다면? 상상만 해도 치가 떨렸다.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사랑의 고백을 하는 남자. 만약 사람의 말에 손이 달려 있다면 당장 아카시의 목을 세게 졸라 숨통을 끊어놓았을 것이다. 숨이 끊어져 바닥으로 쓰러지는 자신의 모습은 상상하기만 해도 두려웠다. 그것도 목이 졸려 죽는다니 최악이다. 아카시는 침실에서 거실로 방향을 틀어, 어제 읽다가 소파 위에 던져두었던 소설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제야 내일 안에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문학 관련 교양 수업이다. 경영학을 배우는 아카시에게는 별 쓸모없는 수업이었지만 수료하지 않으면 필요한 학점을 채울 수가 없다. 전공만 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과 함께 펼쳐든 책도 몇 줄 읽지 못해 진저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지금 한 말이 내 기억에 타들어가서 당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영원토록 내 가슴을 파고 들어가리라는 것을 생각하는 거요? 내가 당신을 죽여 놓았다고 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당신도 알고 있어. 그리고 캐서린, 내가 내 생명과 마찬가지로 당신을 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 않소! 당신이 무덤에서 편안히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살아남아서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지독하게 자기만을 생각하는 당신이라도 만족할 게 아니오?”
과제로 주어진 소설은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 이 소설은 지금 처음 읽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다. 어째서 사랑 같은 것에 연연하면 몸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런 것에 목숨을, 인생을, 에너지를 전부 쏟아 붓고 결국은 파멸의 길로 이끌려 갈 수밖에 없는 히스클리프의 운명은 아카시에게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저, 불쾌하다. 그뿐인 것이다. 분명히 이 책을 읽고 써야 할 리포트에도 히스클리프에 대한 비난만 가득하겠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그건 곤란하다. 어떻게든 교수의 마음에 들 만한 내용을 써내야 할 텐데. 머리가 복잡해지자 눈을 감고 책에 얼굴을 묻었다. 아니, 머리가 복잡해진 건 답이 나오지 않는 리포트 때문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 사흘 간 몇 번이고 느꼈던, 숨이 막혀 오는 기분이 아카시를 습격하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다. 전부 때려 부수고 싶다. 소파 맞은편에 놓인 TV부터 시작해서 그가 음악을 듣는 데 사용하는 고급 스테레오도, 그 위에 장식된 고급 클래식 CD들도, 전부 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 무엇이던 간에 부숴 없애버렸으면 좋겠다. 아카시는 책을 내던지고 머리를 감싸 안았다. 역시 사흘째는 위험했다. 금방이라도 비명이 터져 나올 듯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 순간 아카시의 귀에 낯익은 멜로디가 스며들었다. 그에게서 전화가 오면 울리게 되어 있는 재즈 밴드의 음악이었다. 아카시는 소파에서 튀어 오르듯 일어나 침실로 달려갔다.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액정에 뜬 그의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아카시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깨어 있었나. 그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온 순간 아카시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던 파괴 충동이 순식간에 증발되어 사라졌다. 응. 대답하자 그는 그 침착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사과의 말을 전했다.
“미안하다. 팀 과제가 밀려서 못 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응.”
“오늘 저녁 전에는 들어갈 테니까.”
“응.”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라는 것이다.”
“응.”
전화가 끊겼다. 00:20. 고작 이십초의 짧은 통화에 아카시는 안정을 찾는 것을 성공했다. 핸드폰 화면은 오후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녁 전. 대체 몇 시라는 걸까. 네 시? 다섯 시? 다섯 시를 넘으면 그건 이미 저녁 시간이겠지. 절충하여 네 시 반으로 정해 놓고, 아카시는 이불 속으로 다시 파고들었다. 한 시간 반. 그 정도는 얌전히 기다릴 수 있다. 사흘, 72시간과 비교해 보면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짧을 시간 아닌가.
“괜찮아……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괜찮아질 거야.”
한 시간 반.
그 뒤면 자신의 가이드가 돌아온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이불 안에 틀어박힌 채 베개에 얼굴을 묻고서, 얌전히 미도리마 신타로의 귀가를 기다리기로 했다.
⁑
센티넬.
일반 인간들에 비해 추월할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
인간이 콘텐츠를 영유하게 된 뒤로 그 소재로 몇 번씩 활용되었던, 그렇기에 창작물 속 인물로밖에 존재할 수 없었던 이러한 존재가 실재한다는 것이 수십 년 전 연구를 통해 밝혀진 이후로, 그들은‘이능력자’‘신인류’혹은‘선택받은 인간’등의 다양한 호칭으로 불려 왔다. 시각, 촉각, 후각 등 공감각을 포함해 사고 능력, 신체 능력의 우월함을 뽐내며 사회의‘우수한’일원으로 자리 잡은 그들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호모 사피엔스처럼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을 초월할‘신인류’로서 칭송받아 왔으며, 아카시 세이쥬로는 바로 이 센티넬이었다. 센티넬로서 그의 능력은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으로, 이를 통해 아카시는 자신의 좌우명이자 또한 집안의 좌우명이기도 한 승리자의 인생을 걸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센티넬이라고 해서 전원이 아카시처럼 완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회에서는‘신인류’라 불리는 센티넬이지만,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그랬듯 현 인류를 멸망시킬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센티넬이라는 존재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 또 하나는 그들이 결코 평범한 인간의 생활을 영유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너무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탓인지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정신적인 안정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벽에 몰렸으며, 결국에는 광인이 되어 사회의 룰에 의해 제거되는 경우가 다반수였다. 때문에 소수의 학회 관계자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에게 그들은 일종의 괴물이자 위험인자였다.
다행히 인류, 아니, 지구의 전 생명을 지배하는 자연 법칙과 유전학 등은 그러한 위험인자를 그저 방치하지만은 않았다. 센티넬이라는 존재가 정식으로 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의 광기를 억제하고 폭주를 제어하는‘가이드’라는 존재가 또다시 밝혀졌다. 센티넬은 평생에 단 한 번 자신을 억제할 수 있는 가이드를 만나게 되며, 그들이 자신의 옆에 있으면서 신체 접촉 등을 통해 정신적 안정을 주는 이상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센티넬이 자신의 가이드를 만나는 것은 0.01% 정도의 매우 미약한 확률이었고 그렇지 못한 자는 국가의 감시 하에 놓여 정신과의 스트레스 케어 등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기에 이것 또한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런 점에서는 다행이도, 아카시 세이쥬로는 0.01%의 센티넬이었다.
아카시 세이쥬로의 가이드, 미도리마 신타로는, 아카시 세이쥬로의 중학교 시절 동창이다. 그와는 중학교 입학식 때 처음 만나 3년 내내 같은 농구부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그 누구에게도‘가장 친한 친구’라고 인정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또한 미도리마 신타로는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함의 견본과 같은 남자여서 아카시에게 자신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는 데다 그러한 자신의 운명에 어떤 불만도 품지 않은 듯 보였다. 아카시는 센티넬로서의 능력을 각성한 중학교 3학년 때 미도리마가 자신의 가이드임을 알게 되었고, 그 뒤로 쭉 그의 보살핌을 받아왔다. 그 시점에서는 이미 진학할 고등학교가 정해져 있어 24시간 함께 있을 수는 없었지만, 전화를 통해 목소리를 듣거나 가끔 만나 신체 접촉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떻게든 자신의 광기를 억누를 수가 있었다. 어찌 보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저주였겠으나, 아카시 세이쥬로는 결코 자신의 상황이 나쁘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센티넬이 0.01%의 확률로 가이드를 만나더라도 성격이나 요인이 맞지 않으면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아카시는 미도리마 신타로가 자신의 가이드라는 사실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자신을 제어해 줄 사람이 존재하며 그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카시는 어떻게든 고등학교의 3년 생활을 마칠 수 있었으며, 무사히 대학에도 진학했다. 그런 점에서 센티넬 중에서도 아카시는 승리자였다. 미도리마 외의 다른 사람이 자신의 가이드였더라면 오히려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물론 그들 두 사람의 관계가 언제나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아직 센티넬로 각성하기도 전에 있었던‘사소한 사건’은 한때 두 사람의 사이를 무척 어색하게 만들었으며, 현재에 와서도 그 앙금이 깔끔하게 풀렸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이 최근 아카시 세이쥬로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신타로. 잠깐 나 좀 봐.”
호출을 당한 것은 한참 공을 던지던 도중이었다. 대놓고 자신을 지목하는 목소리에 슛 모션을 취하던 미도리마 신타로는 공을 잡은 채 다시 착지했다. 뒤를 돌아보자 팔짱을 낀 아카시 세이쥬로의 모습이 보였다. 예쁘장하고 사나운 얼굴에는 다름 아닌 미도리마 신타로를 향한 불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특히 그의 두 눈에. 그 원인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미도리마는 들고 있던 공을 버리고 말없이 아카시를 따라나섰다. 등 뒤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예요? 아카싯치가 직접 소환할 줄이야, 미도리맛치치고는 별일인데요.
그러게 말이야, 무슨 일 있었던 걸까? 분위기가 왠지 험악하잖아.
그렇네요. 어딘가 심각한 것도 같군요.
심각한 수준이 아냐- 아카칭, 화내고 있는 것 같구-
차례대로 키세 료타와, 모모이 사츠키와, 쿠로코 테츠야와, 무라사키바라 아츠시의 목소리였다. 체육관을 나와 아카시가 시키는 대로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그들의 목소리는 미도리마의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아카시 세이쥬로와 자신을 한데 묶어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것은 악의가 없더라도 미도리마에겐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다.
“신타로.”
그리고 그 잡음은 아카시에게 이름을 불린 순간 깨끗하게 사라졌다.
“내가 왜 널 여기로 불렀는지 알겠어?”
“……짚이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아카시 역시 거짓말은 하지 말라는 듯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아카시의 눈동자는, 왜 가장 중요한 것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네가 요 며칠간 노골적으로 날 피하고 있잖아.”
“그랬던가.”
“모른 척 하지 마. 답장을 못 받은 메일만 벌써 열 통이 넘어. 그 중 몇 통은 급한 내용이었고. 혹시 핸드폰이 고장 났다고 할 거야?”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 따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왜지?”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미도리마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아카시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그대로였다. 그것은 즉,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읽어내는 아카시의 눈이 정작 중요한 것은 하나도 읽어내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내게는 너와 함께 있는 걸 거북하게 느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이유?”
“어떤 이유냐니…… 난 네게…… 차였단 말이다.”
일주일 전, 미도리마 신타로는 아카시 세이쥬로에게 고백을 했다. 부활동이 끝나고 언제나처럼 부실에서 간단히 회의를 가진 뒤, 장기를 몇 국 두고서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가려던 방과 후의 일이었다.
「널 좋아한다.」
미도리마가 어떤 반응을 원하고 그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거절당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이 품은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확신하고도 고백을 감행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미도리마는 자신의 그 말이 일반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과 아카시가 이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생각대로 아카시는 당황스러운 기색이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며 미도리마의 고백에 의문을 제기하고 동요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도리마가 상상한 반응의 범주였다. 동성에게 고백을 받고서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쪽이 이상한 것이다. 아카시도 조금 당황하기는 하겠지만 원체 침착한 성격이니만큼 금방 냉정을 찾을 것이라고, 미도리마는 생각했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랬기에 아카시가 겁에 질린 얼굴로 그렇게 물었을 때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절, 혹은 반감은 예상했어도 그 질문을 던졌을 때의 아카시는 분명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방을 너무 세게 잡아서 새하얗게 질린 손가락이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도 시선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눈동자나,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 몸 같은 게 그랬다. 미도리마가 알고 있는 한 아카시가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패배와 두려움을 모르는, 어디에서나 고고하게 서 있는 왕. 그것이 미도리마가 가지고 있는 아카시의 이미지였기에 더욱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넌 내게 그런 말을 하고서, 대체 뭘 바라는 거지.」
금방이라도 소리치며 덤벼들 듯 격해진 목소리가 신경 쓰였다. 본인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지만, 사실은 조용히 떨리고 있는 작은 어깨가 신경 쓰였다. 창백해지는 얼굴이 신경 쓰였다. 전신에서 나오고 있는 두려움의 오오라가 신경 쓰였다.
「네가 날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받아들여질 리 없는 소망을 입 밖에 낸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도리마가 진심을 말한 보람도 없이, 아카시의 반응은 더욱 격해졌다. 아카시는 미도리마의 그 소망을 듣자마자 잔뜩 긴장한 몸을 무언가가 건드렸을 때처럼 흠칫 놀라며,
「그건 안 돼……!」
미도리마 신타로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말을 뱉었다.
아카시 본인도 소리를 질러 놓고는 당황한 듯 했지만, 노골적으로 거절당한 미도리마만큼 놀라고 어이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미도리마 자신이 상상했던 거절의 반응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울컥했다. 뭔가 외치고 싶은 기분뿐이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고백을 했는데 거절당했다고 해서 아카시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미도리마는 아카시가 냉정함을 찾을 때까지 가만히 서서 주먹을 쥐고 있었다. 테이핑 너머로 손톱이 손바닥을 찌르는 것을 느낄 정도로 세게.
그러나 그 인고의 기다림 끝에 아카시에게서 나온 대답은 역시나 거절의 말이었다. 거절당할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 결과를 눈앞에 두는 것은 역시 충격이 컸다. 미도리마는 절망에 휩싸이기 전에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왔다. 집까지 어떻게 돌아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침대 위에 엎어져 세 시간 가까이 멍하니 있었다. 다음날 아침엔 아카시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았지만 학교에 가면 아카시와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1군 멤버와 한데 모여 점심을 먹는데다 겨울 대회 역시 얼마 남지 않아 연습하기에도 바빴다. 1학년과 2학년의 연습도 따로 지시해야만 한다. 평범한 중학생의 일과치고는 무척 벅찬 스케줄이었다.
그래도 절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었기에, 미도리마는 아카시를 노골적으로 피하는 것 대신 사적인 대화를 줄이는 방향을 택했다. 금방 괜찮아질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과는 달리 거절당한 쇼크는 일주일 이상 남아 있었고, 아카시가 보내는 메일이나 방과 후 장기 대국 제의에도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감정 정리를 하질 못했으나, 그는 조만간 누군가가 그의 태도를 지적할 거라는 사실도 알고는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 아카시일 가능성도 분명 고려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카시의 반응은 미도리마가 상상하던 것과는 좀 달랐다.
“……그 일과 네가 날 피하는 것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지?”
순간 미도리마는 눈앞에 있는 것이 정말 아카시 세이쥬로인지를 잠시 의심했다. 어떠한 트러블에도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아카시이기는 했으나, 지금 것은 좀 이상했다. 아카시는 평소의 태연함에 비해 남의 감정을 잘 읽어내는 편이었다. 제 의견을 밀고 나가는 독선적인 면모는 어디까지나 상대의 성격, 생각, 의견 등을 전부 파악하고 거기서 구멍을 찾아내는 사전 작업 이후에야 드러나는 것임을 미도리마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무라사키바라 아츠시와의 농구 대결 이후에 아카시의 성격이 지나치게 날카로워졌고, 이전에는 그나마 맴돌고 있던 온화한 분위기도 모조리 사라졌다는 사실은 감안해야 했다. 그 사건을 차마 막지 못한 것은 제 감정에만 사로잡혀서 아카시에게의 접근을 최대한 피하고 있었던 미도리마의 불찰이기도 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미도리마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치 그의 절망 따윈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이 태도는,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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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권수 / 구매 원하는 행사(2월 서코 or 아카시 온리전) / 통판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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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조사는 2월 5일(수요일) 저녁 5시까지입니다.
으으 이거 수량조사하는 의미 없쟝... :Q... 원고가 늦어서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