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 적우 온리전 신간 최종인포입니다!
11/30 서울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아카시 세이쥬로 수 온리전
"Dear my Emperor"
'을 5-1 선배냐 동기냐 그것이 문제로다' 부스에 위탁하는
녹적(미도리마x아카시) 소설본 2종 수량조사받습니다!
<< : 아카시 세이쥬로의 존재증명>>
미도리마 신타로 x 아카시 세이쥬로
B6 / 138p / 9,000원
*윈터컵이 끝난 뒤 갑자기 보쿠시로 되돌아온 아카시가 미도리마의 집에 장기입원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쿠로코의 농구> 원작 완결(12월 말 추정)으로부터 며칠이 지나간 시점의, 약 2주간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완결 네타 포함.
미도리마 신타로는 시계를 응시했다. 오후 일곱 시 십분.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어지는 모양이었다. 찻잔에 일부러 입을 대며 최대한 평정을 찾으려 하는 미도리마와는 달리, 어머니는 초조한지 턱에 손을 괸 채 계속해서 거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상하네, 길이 많이 막히나? 그 중얼거림을 귀에 담지 않으려고 애쓰며 미도리마는 이미 식어 미지근해진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동생은 오빠의 그런 긴장을 눈치 채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였다. 여동생은 그저 제 무릎 위에서 우는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여동생이 안고 있는 것이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였다면 집 앞에서 들려올 아주 작은 소리에도 반응했을 텐데. 미도리마는 제 집의 애완동물이 개가 아닌 고양이인 것을 처음으로 살짝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의 미도리마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상태였기에, 강아지가 있었어도 다를 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극도로 예민해진 청각이 집 밖에 멈춰 서는 차의 소리를 들었을 때, 미도리마는 찻잔을 아래로 내려놓았다. 달그락, 하는, 미도리마의 귀에밖에 들리지 않을 아주 작은 망설임의 소리 직후 초인종이 울렸다. 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여동생은 고양이를 껴안고서 현관으로 나가는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아버지가 다녀왔다고 말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후우. 미도리마는 짧게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와요. 멀리서 오느라 피곤하지 않았어요?”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귀를 파고드는, 익숙한 목소리. 이런 상황에서 들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의바르고 착한 소년의 목소리를 가장하는 듯했다. 미도리마는 현관으로 다가가, 아버지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자신이 무척 잘 안다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던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다. ……아카시.”
↭↭↭
“연휴가 끝나면, 입원 환자가 한 명 생길 것 같다.”
아버지가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설 연휴의 마지막 날 아침, 어머니가 정성스레 만들고 여동생이 행여나 떨어뜨릴세라 조심조심 식탁까지 옮겨놓은 먹음직스러운 설 요리를 앞에 둔 상황에서였다. 막 연근조림을 입에 넣은 터라 미도리마가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여동생이 눈을 빛내며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 옆에서 떡국 그릇을 든 어머니는 묘하게 침묵을 유지하고 있어서, 그 입원 환자가 어지간히 심각한 사람이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버지가 왜 이런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하는지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병원은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클리닉이었다. 거기 입원 환자가 생기는 것과 가족들 사이에서는 어떤 연관성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은 것도 신경 쓰였다. 대체 어떤 환자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순수하게 궁금해져, 미도리마는 입을 열었다.
“뭔가 특별한 사정이 있는 사람입니까?”
“음…… 실은 그렇다. 원래 우리 병원에 다니던 환자가 아니라, 특별히 부탁받은 사람이니까. 그리고…….”
슬쩍 아버지가 미도리마의 눈치를 보았다. 아버지의 눈빛에 담긴 착잡한 심정에, 그리고 그 원인을 알 수 없음에, 미도리마는 놀랐다. 그 환자가 자신과 관계된 사람이라는 뜻일까? 순간 머릿속에 누군가의 인영이 스쳐 지나갔다. 대체 왜 그 녀석의 얼굴이 여기에서 떠오르는 거지— 미도리마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아버지는 놀랍게도 입을 열어 바로 그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그 환자는…… 아카시 세이쥬로 군이다, 신타로.”
순간 뜨거운 국물이, 차마 저지할 틈도 없이 미도리마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사레가 들릴 뻔했으나, 미도리마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화끈거리는 입안의 고통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 채, 미도리마는 아버지의 그 충격적인 발언에만 반응했다.
“누구…… 라고, 하셨습니까?”
아카시 세이쥬로.
어째서 그의 이름이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가.
미도리마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아버지와,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카시가, 우리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다는 말인가?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 없었는데— 까지 생각하다가, 미도리마는 문득 그 일이 아니더라도 아카시 세이쥬로로부터 소식이 들려온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작년 12월 말, 정확히는 이 설 연휴로부터 며칠 전, 윈터컵 결승전이 끝났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인생 최초의 패배를 맞이한 아카시 세이쥬로는 그 날 이후 미도리마 신타로를 포함해 테이코 중학교 동창 그 누구와도 연락을 끊고 지내고 있었다. 모종의 이유로 이전까지 그들의 관계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작년 겨울에조차 꼬박꼬박 연하장을 받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아카시 세이쥬로의 연락 두절은 확실히 기묘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이 생겼다면 내게 연락 한 통 정도는 넣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세한 사정까지는 나도 들은 바가 없다만, 그 아이의 아버지인 아카시 회장님이 직접 부탁하신 일이다. 겨울방학 동안 그 아이를 맡겨 두고 싶다고. 그리고 너도 여러모로 도와줬으면 한다고 말이다. 물론 먼저 네 의사를 타진한 다음에 확답을 줄 생각이긴 하지만…….”
쯧, 하고, 아버지가 가볍게 혀를 찼다. 모든 일을 순서에 맞춰서 처리하는 아버지가 황급히 답을 해야 할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원인이 왜 아카시 세이쥬로인 걸까. 미도리마는 생각에 잠긴 채—물론 그런다고 저 의문들에 대한 답이 저절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입을 다물었다. 그 바람에 얼굴이 무시무시하게 굳어지자, 여동생이 겁에 질려 미도리마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오빠? 그 부름에야 겨우 얼굴을 든 미도리마는 여동생뿐 아니라 부모님도 자신에게 걱정스런 시선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겸연쩍은 기분이 되어 찻잔을 잡았다. 방금 전, 아카시의 이름을 듣고 만 탓에 아무런 고통도 느낄 수 없었던 입 안은 다시 뜨거운 찻물을 받아들이고는 고통의 비명을 질러댔다.
“만약 네가 힘들겠다 싶으면 말해라. 거절해 두마.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
여기서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최선일까.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한 것이나 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을 맡기려는 건가 하는 호기심 이전에,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다지 아카시 세이쥬로와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미도리마 신타로의 본심이었다. 아카시와 연락이 되고 안 되고는 둘째 문제다. 아카시 세이쥬로를 다시 만난다면 내년의 인터하이에서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제가…… 도움이 되겠습니까?”
“적어도 나와 네 어머니보다는 네 힘이 필요할 거다.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라면 네 신세를 안 져도 되겠지만, 아카시 군이 만약 오게 된다면 우리 집에서 생활할 거야. 2층 손님방을 내줄까 한다.”
“……집이요?”
집이라니, 우리 집 말인가? 미도리마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2층으로 옮겼다. 2층에는 아버지가 서재로 사용하는 자료실과 미도리마의 방 외에는, 간혹 아버지의 동료가 머물 때 내주곤 하던 손님방이 있었다. 작은 복도를 가운데 끼고 미도리마 신타로의 방과 마주보고 있는 그 방에, 아카시가 머물게 된다는 뜻이다. 하필이면 거기인가. 미도리마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번에는 방금 전처럼 가족들이 걱정하며 안색을 살필 만큼 오래 얼굴을 굳히고 있지는 않았다. 냉정하게 생각할 여유를 되찾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철저히 계획을 짜 둔 걸 보면 아카시 세이쥬로의 ‘입원’ 준비는 상당히 진척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아직 확답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으나, 새삼스레 거절의 말을 꺼내기에는 어려운 상황일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미도리마 신타로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전 괜찮습니다.”
↭↭↭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사흘 전의 일이다.
그리고 오늘 아카시가 퇴근하는 아버지와 함께 집에 올 거라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서 전해 듣고, 미도리마는 솔직히 말해 아침부터 전혀 평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울방학에 들어간지라 수업이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하루 종일 넋을 놓고 수업을 듣다가 지적을 받을 염려는 일단 사라진 셈이니까. 물론 오늘 있었던 농구부 연습에는 도저히 본디 컨디션으로 임할 수 없어서, 주장인 미야지에게서 ‘[삐—]하고 [삐—] 해 버리겠어’ 라는 경고까지 받았다. 신쨩이 웬일로 경고를 다 받느냐고 비웃으면서도 걱정스런 눈빛을 감추지 못하던 타카오의 얼굴을 떠올리자 착잡함은 깊어져만 갔다. 실은 오늘부터 아카시가 집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의, ‘아카시가 왜?’ 라는 질문도 물론.
‘……내가 제일 알고 싶다는 것이다, 그건.’
그리고 지금 얼굴을 마주한 아카시는, 미도리마의 ‘오랜만이다’ 란 인사에 응, 이라고 작게 대답한 뒤 제가 들고 온 캐리어로 시선을 돌렸다. 일부러 미도리마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상황에 의아함을 느낀 것은 아무래도 미도리마뿐인 모양으로, 어머니는 오히려 밝은 목소리를 내며 아카시를 맞이했다.
“자, 어서 들어와요. 신타로, 방까지 안내해주렴.”
“알겠습니다. 아카시, 짐을.”
“아니, 괜찮아. 별로 무겁지 않으니까.”
대답하면서도 아카시는 미도리마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했다. 언제까지고 현관 앞에서 실랑이할 수도 없었기에, 미도리마는 아카시의 짐을 향해 뻗었던 손을 겸연쩍게 거두고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아카시를 안내했다. 아버지가 슬쩍, 잘 해라, 라고 응원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으나 당연하게도 그것은 전혀 힘이 되어 주질 못했다. 2층으로 올라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낸 미도리마는, 뒤에 서 있는 아카시의 존재를 외면하며 문을 열고 방 안을 아카시에게 보여주었다.
“여기가 네가 쓸 방이라는 것이다. 일단 청소는 했고, 침대 시트와 이불도 새것으로 마련했어. 책상은 들여놓질 못했는데, 대신 저기 테이블을 놔뒀다는 것이다. 그 옆에는 방석도 있으니까……,”
“알았어.”
“……그리고 내 방은 바로 이 앞이니까, 궁금한 게 있거나 용건이 있으면 얼마든지 찾아오라는 것이다. 또 저쪽은 서재인데, 아버지가 계실 때가 아니면 언제든지 써도……,”
“그 설명은 선생님께도 전부 들었어.”
두 번이나 말을 도중에 잘리자, 최대한 덤덤한 척 하려 했던 정신이 다시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제아무리 어색할 수밖에 없는 관계라도, 이건 너무 매몰차지 않은가. 불만을 말하려고 아카시 쪽으로 몸을 돌린 미도리마는,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보고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차가운 아카시의 양쪽 눈은, 마치 미도리마를 방해꾼이라도 된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어째서 ‘아카시’가 저런 표정을 짓는가.
분명, ‘아카시’는 윈터컵 결승전 뒤에—
.
“더 할 말 없으면 나가 줄래? 옷을 갈아입고 싶은데.”
“아, 아니, 나는…….”
“난 옷을 갈아입고 싶다고 말했어, ‘신타로’.”
순간 귀에 들어온 호칭을, 미도리마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겨우 그 호칭의 의미를 알아차렸을 때는 미도리마를 지나쳐 방 안으로 들어온 아카시가 그의 등을 세게 밀어낸 뒤였다. 졸지에 방 밖으로 쫓겨난 미도리마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도저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왜지? 왜 또 ‘저’ 아카시 세이쥬로가 나타난 거지?
미도리마가 당황한 것도 당연했다. 윈터컵 결승전에서의 아카시 세이쥬로는— 분명히 ‘이전의’ 아카시 세이쥬로로 돌아와 있었다. 결승전이 끝난 뒤, 결승 상대이자 승자였던 쿠로코 테츠야와 악수를 나누는 모습까지 목격했던 미도리마에게, 지금의 상황은 도저히 예상 못했던 것이었다.
미도리마 신타로를 ‘신타로’ 라고 부르는 존재.
그것은 테이코 중학교 3학년의 겨울, 갑자기 표면으로 떠오른 아카시 세이쥬로의 제 2인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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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마 신타로는 꿈을 꾼다.
차갑고, 인간의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어두운 방. 새로 깐 시트와 이불이 깔린 침대 위에서 눈을 뜬 미도리마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옆을 돌아본다. 바닥에서, 억눌린 숨소리가 들린다. 어둠 속에 한 인영이 움츠린 채 누워, 담요를 전신에 두르고, 괴로운 듯 몸을 떤다. 그 숨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미도리마는 알고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 떨고 있는 작은 어깨에 손을 뻗는다. 손이 담요에 닿는 순간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이 저려온다. 그리고 얼굴을 마주한 아카시 세이쥬로는 말한다.
—네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어.
“헉……!”
잠에서 깨어난 미도리마는 땀에 흠뻑 젖은 채 몸을 일으켰다. 나이트캡을 벗어던지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미도리마는, 방금 전 본 생생한 영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꿈. 아카시 세이쥬로의 꿈—
“신타로? 일어났니?”
그 장면을 재차 떠올리기도 전에 방문 밖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미도리마는 방문을 열었다가, 어쩐지 창백해진 어머니의 얼굴을 본 순간 꿈의 내용을 떠올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무슨…… 일입니까?”
“아카시 군이 대답이 없어. 평소에는 이미 이 시간에 일어나 있었는데.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고…… 열쇠는 아직 네가 갖고 있니?”
“예…… 제가 열게요.”
미도리마는 황급히 열쇠를 챙겨 아카시의 방문을 작게 노크했다. 아카시? 불러본 이름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할 수 없지. 혼나는 건 나중 문제다. 미도리마는 열쇠를 꽂아 돌려 아카시의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을 무언가가 막고 있었다. 아카시의 캐리어 같았다. 매일 이런 걸 방문 앞에 두고 잤단 말인가. 혀를 차면서도 방문을 억지로 밀어 연 순간, 문을 열기 직전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이질적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피 냄새……?
“어머니, 구급상자를!”
외치고 방 안으로 들어선 미도리마는 담요로 몸을 감싼 채 잠든 아카시를 안아 올렸다. 아카시의 손목에는 역시나 무언가로 긁은 듯한 상처가 잔뜩 나 있었고, 반대쪽 손의 손톱도 피로 물들어 있었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그 장면을 본 것만으로도 미도리마는 오히려 제 전신의 피가 바싹 마르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게다가 잘 보니 아카시가 몸에 두른 담요에도 군데군데 피가 굳어 갈색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미도리마는 아카시를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
“아카시, 일어나라! 아카시!”
“으음…….”
소란스러운 소리에 아카시가 천천히 눈을 떴다. 잠시 잠에서 깨지 못한 듯 눈을 깜박이던 아카시는 미도리마가 제 방에 들어와 있다는 걸 눈치 채고는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신타로,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렇게 묻는 듯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미도리마는 걱정스레 뛰어온 어머니에게서 구급상자를 받아들고 아카시의 옷소매를 강제로 걷었다. 물론 아카시는 이 상황에 대한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뭐 하는 거야, 하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보면 모르냐. 치료할 거다.”
“됐어, 이쯤이야 내버려두면 나아.”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왜 쓸데없이 흥분하고 그래? 이거 놔, 약 같은 건 혼자서도 바를 수 있으니까…….”
이 상황에서도 아카시는 자신을 밀어내기만 할 뿐이었다. 그 사실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나, 미도리마는 자신을 밀어내려는 아카시의 손목을 세게 붙잡고는 뒤에 어머니가 서 있는 것도 잊어버린 채 소리 질렀다.
“고집도 적당히 부리란 것이다! 내가…… 내가 널 가만히 내버려둘 수 있을 리 없잖아!”
그 외침에는 제아무리 아카시라도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잠시 눈을 크게 뜨고 미도리마를 바라보던 아카시는, 곧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너는. 아카시의 입술이 소리 없이 그런 모양을 그렸다.
“너는, 정말 너무해…….”
그리고 뒤이어 들려온 작은 목소리에 미도리마는 손목을 소독하다 말고 손을 멈추었다. 그러나 미도리마가 그 말에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아카시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와 동시에 반항할 기색이 만연했던 아카시의 전신에서 힘이 빠지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깜짝 놀란 미도리마는 그를 받아 안았다가, 팔 안에서 천천히 들려오는 숨소리에 놀람이 더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들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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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실례합니다, 선배. 혹시…… 오늘 연습에 누굴 좀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다음날 아침, 집을 출발하기 직전 미도리마는 미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야지는, 그런 얘기는 어제 했어야지, 하고 핀잔을 준 뒤에 그게 누군데? 라고 물었다. 혹시라도 아카시의 이름을 대면 난색을 표하는 게 아닐까. 미도리마는 슬쩍 계단을 쳐다보았다. 외출 준비를 한다며 올라간 아카시는 아직 내려올 기미가 없었다. 역시 이 틈에 용건을 전부 설명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이, 미도리마? 하는 미야지의 재촉에 미도리마는 결국 입을 열었다.
“그게…… 아카시입니다.”
“아카시라니? 설마 아카시 세이쥬로? 라쿠잔 주장인?”
어제 아카시의 이야기에 의하면 더는 그렇지 않겠지만. 미도리마는 일단 예, 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 녀석이 도쿄에 와 있어? 뭐 하러? 아, 테이코 출신이니 본가가 도쿄던가. 방학이라서 놀러오기라도 했냐? 라쿠잔은 연습 없대? 아니, 그것보다 우리 연습은 왜?”
“그게…… 지금 사정이 있어서 잠시 저희 집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젯밤에 갑자기 연습을 보러가고 싶다고 해서요.”
“으음…….”
“어차피 견학이 금지된 것도 아니고, 공식 정찰이라고 생각해 두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아카시도 연습 내용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는 않을 겁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뭐……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대신 등가교환이야. 너도 나중에 라쿠잔 연습 보고 와.”
“……말해보겠습니다.”
그럼, 하고 전화를 끊고, 미도리마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허락은 의외로 쉽게 떨어졌지만, 상당히 까다로운 교환조건이 붙고 말았다. 어찌됐든 아카시에게서 농구를 그만둔 이유에 대해 듣지 않으면 안 되기에 딱 잘라서 제안을 거절하지는 모했지만, 만약 조건이 무효가 되었을 때는 미야지의 분노를 직접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뭐, 그때는 그때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가방을 메던 미도리마는 어느새 1층으로 내려와 있는 아카시와 마주했다. 평상복에 재킷만 걸친, 무척 가벼운 차림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상태가 이상했다. 계단 난간을 그저 붙잡고만 있는 손은 무언가, 아주 강렬한 의지로 감싸인 듯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표정도 무척 무겁다.
“아카시? 왜 그러고 있냐는 것이다. 가자.”
“……역시 그만둘래.”
“뭐? 아, 잠깐! 아카시!”
그렇게만 말하고 도로 계단을 올라가버리려는 아카시를 미도리마는 황급히 붙잡았다. 팔을 잡힌 아카시는 손을 놓으라고도 하지 않은 채 미도리마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
“……나 때문에 그렇게 비굴하게 부탁할 필요 없어. 네 ‘책임’과는 관계없는 문제잖아.”
“그게 무슨 소리냐, 대체. 그리고 딱히 비굴해진 적 없다는 것이다.”
“그래? 나한테는 그렇게 보였는데. 마치 거래처에 굽신거리는 회사원 같았어.”
예를 들어도 하필이면 그거냐. 게다가 상당히 날이 선 말투였다. 미야지와의 통화가 어지간히 아카시의 기분을 상하게 한 모양이었다. 대체 아카시가 무엇을 그리 기분나빠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설득이 먼저였다.
“괜찮다. 가자는 것이다. 허락까지 받아 놨는데 정작 네가 안 나타나면, 그때야말로 비굴하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이 미야지 선배는 형보다 난폭하단 말이다.”
“…….”
“가자, 어서. 지각하면 기합 받는다.”
그러자 아카시는 다시 몸을 돌렸다.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은 여전했지만, 일단 미도리마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이기는 한 모양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카시를 1층으로 데리고 내려온 미도리마는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배웅하는 어머니를 뒤로했다. 학교로 걸어가는 길에서 아카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집을 나올 때부터 잡고 있던 미도리마의 손을 놓으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것이 유일한 위안이자, 또한 불안이었다.
“집중하지 못하겠냐, 미도리마!”
고함소리에 미도리마는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방금 그는 타카오가 준 패스를 또 놓치고 말았다. 이걸로 벌써 세 번째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미도리마는 아카시를 바라보았다. 타카오의 패스를 공중에서 받아 바로 슛을 쏘는 미도리마의 그 기술은, 지금 관객석에서 입을 다문 채 그들을 바라보는 저 아카시에게 이미 공략당한 바였다. 물론 아카시의 ‘천제의 눈’과 각종 신체능력이 없이는 누구도 잡아내기 힘든 기술이었으므로 계속 갈고닦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공략당한 시합을 떠올리면 반응이 한 차례 늦거나 오히려 빨라져 패스를 놓치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카시도.
관객석에 똑바로 앉아 그들을 지켜보는 아카시는, 미도리마에게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겠지만, 매우 착잡해 보였다. 냉정하게 연습을 분석하는 것으로 보이는 저 눈도 미도리마에게는 어쩐지 슬퍼 보이는 것이었다.
「난 농구를 그만뒀으니까.」
그리고 그 원인이 어젯밤 들은 아카시의 충격적인 선언에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농구를 그만두었다. 아카시 세이쥬로가. 그러면 슈토쿠는, 미도리마 신타로는— 영영 아카시에게 승부를 걸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테이코에 있을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굳이 농구가 아니었어도 아카시에게 승부를 걸 만한 것이 많았다. 성적으로도, 장기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미도리마 신타로가 슈토쿠에 있다면, 아카시 세이쥬로는 라쿠잔에 있다. 도쿄와 교토의 거리는 멀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지켜야 할 일상이 있다. 아카시도 그건 마찬가지겠지. 미도리마 신타로에게는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아카시를 만나러 가, 농구 외의 종목으로 승부를 요청할 구실이 없었다. 그제야 미도리마는 농구라는 것이 자신과 아카시 세이쥬로를 잇는 유일한 끈이었음을 깨달았다. 지금은 괜찮다. 바로 옆에 아카시가 있으니까. 당장은 여유가 없어도, 언젠가는 대국을 요청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열어 주겠지. 하지만 겨울방학이 끝나면? 제 아버지의 의도가 어쨌든 간에 아카시는 겨울방학이 끝나는 대로 미도리마의 집을 나갈 거라고 선언했었다. 그때까지 제 증상이 낫지 않더라도.
「아버지가 환자인 네 말과 아들인 내 말 중 무얼 믿을지 시험해보고 싶다면 얼마든지 반항해 봐라.」
아카시에게는 그렇게 말했지만, 아카시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완치된 척을 한다면 자신이 그것을 과연 붙잡을 수 있을까? 미도리마에게는 아카시를 여기 붙들어둘 수단도 힘도 없었다.
‘왜냐, 아카시. 왜 농구를 그만둔 거냐……!’
“앗……!”
그때 타카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미도리마가 쏘아 올린 슛이 크게 빗나갔기 때문이었다. 미도리마, 너 임마! 연습 흐름을 어디까지 끊어놓을 셈이냐! 미야지의 우렁찬 고함소리에 미도리마는 반사적으로 관객석을 돌아보았다. 실수에 대한 사과도 없는 말을 들을 위기였지만, 왜인지 뒤를 돌아봐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미도리마는, 안색을 창백하게 굳힌 채 입을 막고 관객석에서 뛰쳐나가는 아카시를 발견했다.
<<사랑임을 확신하기까지의 몇 가지 사소한 감정>>
미도리마 신타로 x 아카시 세이쥬로
A5 / 64p / 6,000원
*사랑받는 것을 모르고 자란 아카시가 미도리마의 연인으로 지내면서 미도리마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쿠로코의 농구> 원작 완결 시점으로부터 4년이 지난 대학 AU입니다. 즉 쿠로바스 완결 네타 포함.
*전체적으로 미도리마→아카시 분위기가 강합니다.
*도중에 타카오가 등장해서 잔소리를 좀 하긴 합니다만 녹고녹 요소는 없습니다.
“슬슬 일어나지 않으면 시간 못 맞춘다, 아카시.”
누군가가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눈을 뜬 아카시 세이쥬로는 머리맡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미도리마 신타로의 진지한 얼굴을 마주했다. 으음.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과 아침마다 찾아오는 편두통을 동시에 이겨내려 애쓰다가, 아카시는 포기하고 다시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5분만 더 자게 해 줘. 아카시 세이쥬로를 아는 사람이 들으면 그 누구나 놀랐을 법한 ‘투정’이 자연스레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물론 이 말을 수도 없이 들어온 미도리마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그는 완강하게 아카시의 품에서 이불을 빼앗으려 들었다. 안 된다는 것이다. 으름장을 놓은 미도리마가 이불을 걷어내자 차가운 기운이 전신을 엄습해왔다. 그 누구라도 따뜻한 이불 속에 파묻혀 있다가 갑자기 바깥 공기에 노출되면 짜증이 날 것이다. 아카시 역시 그것은 예외가 아니어서, 아카시는 제 어깨를 붙들고 몸을 일으켜 세워 주는 미도리마의 손을 다소 날카롭게 뿌리쳤다. 아직 졸음이 역력한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리는 아카시의 옆에 미도리마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네가 싫다면 손대지 않겠다는 배려의 일종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직 인간의 체온이 남아 있는 카디건이 아카시의 어깨에 덮였다. 방금 전까지 미도리마 본인이 입고 있었던 물건이 분명했다. 카디건이 덮인 어깨에서 전신으로 온기가 퍼져 나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천천히 시야가 평소의 선명함을 되찾았다.
“자, 네 옷이라는 것이다. 가서 씻어라.”
그렇게 말하며 미도리마가 아카시의 무릎 위에 놓아준 것은 이틀 전 아카시가 이 집에 두고 갔던 옷이었다. 전부 깨끗이 빨아 다림질까지 해 둔 모양으로, 속옷만이 새로 사온 것인 듯 낯선 무늬였다. 이쯤 되면 더는 늑장을 부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아카시는 어깨에 걸친 카디건에 팔을 꿰어 넣고 침대를 벗어났다. 품이 큰 카디건은 어깨의 선을 따라 허리 아래까지 길게 늘어질 정도였다. 어린아이가 어른의 옷을 입은 것 마냥 어색하기 짝이 없는 차림새였을 것이나, 아카시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옷을 든 채 목욕탕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욕조를 가득 채운 따뜻한 물은 미도리마가 받아둔 것이다. 미도리마는 아침에는 간단히 샤워만 마치는 타입이다. 네가 자러 오는 날은 수도세가 두 배는 나온단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늘 그렇게 투덜거리곤 했으나, 아침마다 아카시를 위해 목욕물을 받아두는 것만은 그만두지 않았다.
옷을 벗어 세탁기 위에 대충 걸쳐 놓고 아카시는 욕조에 몸을 담갔다. 음, 딱 좋은 온도야. 욕조 안에 몸을 깊이 담그고 아직 남아 있던 졸음을 말끔하게 씻어 내는데, 욕실과 탈의실을 가르는 유리문 너머로 노크 소리와 함께 미도리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카시, 오늘은 커피하고 홍차 중 어느 쪽으로 할 거냐.”
“음- 커피.”
“알았다는 것이다.”
그냥 자기가 마시는 걸로 준비해 주면 군말 없이 마실 텐데도, 미도리마는 매일 아침 꼬박꼬박 아카시의 의사를 묻고는 했다. 마치 제멋대로 마실 것을 내놓으면 아카시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왜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는 걸까. 투정과 비슷한 불만을 중얼거리며 아카시는 목욕물에 입까지 담근 채 숨을 내쉬었다.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가, 이내 사라진다.
덧없지 않은가. 이것도, 저것도.
잠시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그고 첨벙대다가, 아카시는 욕조 끝으로 손을 뻗어 바구니 하나를 끌어왔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놓인 그 바구니 안에는 샴푸와 바디샴푸가 들어 있다. 평소에 그것들은 샤워기 옆의 찬장에 들어 있으나, 아카시가 목욕할 때만큼은 늘 아래의 바구니로 옮겨진다. 그것은 즉, 미도리마가 목욕을 마친 뒤 그것들을 아래쪽으로 내려놓곤 한다는 뜻이었다. 아카시가 추운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올 때 느끼는 냉기를 세상에서 제일 꺼려하기 때문이다. 아카시는 몸을 욕조에 그대로 담근 채 머리에 비누칠을 끝내고서, 샤워기를 틀어 물을 맞으며 욕조의 물을 아래로 흘려보냈다. 물 위에 떠 있던 샴푸 거품이 배수구로 남김없이 흘러 내려가면 아카시의 목욕도 끝이 난다. 벽에 걸린 큰 타월로 몸을 감싸고 밖으로 나오니 세탁기 위에 벗어두었던 파자마가 보이질 않았다. 정리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카디건은 그대로 있었기에, 아카시는 그것이 옷을 갈아입고도 추우면 입어도 된다는 뜻임을 이해했다. 옷을 꼼꼼하게 갖춰 입고 카디건을 어깨에 두르는데 밖에서 미도리마가 아침 준비가 다 됐다는 말을 알려 온다. 오늘도 제시간이네. 제가 목욕을 마치는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는 저 능력은 언제 봐도 혀를 내두르게 된다.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밖으로 나오자 미도리마가 식탁 바로 옆까지 멀티 탭을 끌어와 헤어드라이어의 코드를 꽂고 있었다. 빨리 앉으라고 눈빛으로 추궁하며 미도리마는 헤어드라이어의 전원을 올렸다. 목덜미와 귀를 뜨겁게 간지럽히는 기분 좋은 바람과 기다란 미도리마의 손가락이 아카시의 머리카락을 능숙하게 헤치며 물기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머리를 완전히 미도리마에게 맡겨 놓고 아카시는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시선을 살짝 앞으로 두면 싱크대가 보인다. 그 옆 건조대 위에는 이미 깨끗이 닦여 있는 한 사람 몫의 그릇이 놓여 있었다. 미도리마의 식사는 아마 아카시가 깨어나기 전에 끝이 났을 것이다.
“오늘은 본가로 갈 건가?”
“아니.”
“그럼 열쇠는 언제나처럼 우편함에 넣어두지. 오늘은 밤늦게야 돌아올 것 같으니, 먼저 밥 먹고 자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할게.”
“…….”
헤어드라이어의 모터가 웅웅 울려 미도리마의 목소리를 방해한다. 그래서 아카시는 그 뒤에, 미도리마가 뭐라고 중얼거렸는지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못한 것으로 해두려고 한다.
「……텐데.」
어차피 들어줄 리 없는 말임을 잘 알면서도 미련이 넘쳐흐른다는 듯이 발음하는 것을, 아카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미도리마 신타로의 자취방은 각자의 생활 패턴이 현저히 다른 두 사람이 드나들며 살고 있지만, 열쇠는 하나뿐이다. 집주인이 아닌 쪽, 즉 아카시 세이쥬로가 언제 갑자기 자신의 집에 찾아올지 모르는데도 미도리마는 여벌 키를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 그것은, 아카시가 미도리마의 자취방을 찾아오려면 언제나 그에게 먼저 연락을 넣거나 사전 통보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 바꿔 말하면, 미도리마는, 아카시가 그 용건이 아니면 자신에게 굳이 먼저 연락을 취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 된다.
어쩌면 그 제안을 거절당한 순간, 미도리마는 일이 이렇게 돌아갈 것임을 대충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슬슬 여벌 키를 만들까 하는데.」
미도리마가 그 제안을 한 것은 그 해 여름, 간만에 두 사람 모두 강의가 없어서, 낮부터 미도리마의 집에 틀어박혀 에어컨을 켜둔 채 거실에서 책에 빠져 있었던 어느 평일이었다. 소파에 누운 채 미도리마의 무릎을 베고 독서에 열중하던-사실 조금 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아카시는 미도리마의 그 말의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같이 살자는 뜻이다. 대학에 들어간 지도 어느새 3년째고, 두 사람 모두 성인이 되었다. 어지간해서는 독립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얘기겠지.
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미도리마의 집은 거실과, 미도리마 자신이 쓰는 침대와 책상을 갖춰둔 큰방과, 창고로 사용 중인 작은방으로 구성된 2LDK 아파트였다. 그 중 작은방은 창고로 사용 중이라고는 해도 거의 비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큰방에 들어가지 않거나 책장을 사지 않으면 진열하기 어려운 책들을 상자에 담아두었을 뿐이고, 그 상자도 고작 한 개뿐이다. 그러니 창고라고 부르기에는 상당히 어색한 공간이기도 했다. 그런 노는 공간을 내버려 둬야 할 이유, 개인 짐이 그렇게 많지 않은 미도리마가 굳이 비싼 집세를 감당하면서까지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빌린 이유에 대해, 아카시는 미도리마가 자취를 시작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다.
「싫어. 난 지금 이 상태가 좋아.」
하지만 아카시는 미도리마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다.
아카시 세이쥬로에게 있어 미도리마 신타로의 자취방은 본가-도쿄 외곽 아카시 가문 사유지에 있는 아카시 가문의 저택-에 있는 자신의 방 외에 아카시가 도쿄 내에 마련한 또 하나의 방이었다. 아카시에게 있어, 자신이 일주일의 대부분-정확히는 강의가 있는 날-을 보내는 그 공간은 딱 거기까지의 의미였다. 그러나 만약 동거를 하게 되면, 그 공간은 아카시 세이쥬로의 집이 된다. 그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미도리마라면 분명 아카시를 위해 아카시 개인의 공간을 내줄 것이었다. 아카시가 큰방을 원한다고 하면, 바로 자신의 침대와 책상을 작은방으로 옮길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그것이 ‘싫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냥 ‘불편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각자의 공간을 갖고 부엌과 거실 등 공용 공간을 함께 쓰는 평범한 룸 쉐어라면, 그리고 그것을 제안한 상대가 다른 사람이라면, 아카시는 얼마든지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미도리마 신타로가 되면, 사정은 상당히 달라진다. 어찌됐든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런가.」
그리고 미도리마는, 아카시가 혹시라도 이유를 물어보면 들려줘야지 하고 생각했던 그 대답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마치 아카시가 거절하는 이유 따위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투였다. 그것은 즉, 미도리마 스스로도 그 제안이 받아들여질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아카시는 그 이상의 의사표시를 전혀 하지 않았고, 작은방은 여전히 상자 한 개만 덩그러니 놓인 창고로 남게 되었다. 그 날 이후 미도리마 쪽에서 동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내는 일은 없었다. 간혹 지나가는 말처럼 짧게 말을 흘릴 뿐이었다.
방금 전처럼.
여벌 키를 만들면 편할 텐데, 하고.
‘……그때 만약,「왜 동거를 하고 싶어하느냐」고 물어봤다면…… 넌 뭐라고 했을까.’
아니,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겠지만.
생각에 잠겨 있으면서도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은 채, 아카시는 토스트 두 장과 스크램블 에그, 커피로 구성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쳤다. 그 사이 머리는 뽀송뽀송하게 말라, 미도리마의 손으로 정성스레 빗질까지 끝마친 뒤였다. 그런 작업을 끝내 놓고도 미도리마의 손은 쉬질 않았다. 빠르게 그릇을 회수해 싱크대로 가는 미도리마의 등이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 너는 가서 학교 갈 준비나 해라’고 말함을 깨닫고, 아카시는 침실로 몸을 돌렸다.
침대 위에는 아카시가 방금 전 세탁기 위에 아무렇게나 벗어두었던 파자마가 곱게 개어 있었다. 만약 아카시가 오늘은 본가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면 그 파자마는 세탁기 안으로 들어가 한 번 세탁된 다음, 마찬가지로 곱게 개어 옷장의 세 번째 서랍 안으로 들어갔을 터였다. 그 서랍 안에는 아카시가 이 집에 두고 다니는 옷가지가 여러 벌 들어 있었다. 셔츠와 바지, 양말 등을 포함해 아카시는 이 집에 제 물건을 여럿 두고 있었으나, 윗도리와 속옷만큼은 두고 다니지 않았다. 윗도리는 미도리마의 것을 입으면 되는데다 공간도 많이 차지하니 그런 것이었지만, 속옷은 조금 다른 이유에서였다. 말하자면 그것은 그 해 여름 아카시가 딱 잘라 ‘싫다’고 대답했던 것의 연장선상이었다. 내가 이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방처럼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와 같이 살 생각은 없다, 라고 하는, 완고한 거절의 완화된 표현.
“아카시, 준비가 다 됐으면 나오라는 것이다. 지각하겠다.”
“아, 응. 미안해.”
가방 안에 노트와 필기도구를 챙겨놓고 전공 서적을 든 채 아카시는 거실로 나왔다. 어느새 설거지를 끝낸 미도리마가 손목시계를 도로 차며 시간을 확인하고 있는 게 보였다. 가자, 라고 말하며 차 키를 집어 드는 미도리마는 가방을 챙기지 않았다. 아침 강의가 없는 거겠지. 그는 그저 아카시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기 위해서 이 시간에 일어난 것이다.
‘……이상한 녀석.’
사실 아카시에겐 아무런 문제도 없다. 아니, 오히려 감사할 만한 일이다. 답답하고, 사용인들로 가득하고, 언제 아버지가 돌아올지 몰라 조마조마해야 하는 본가의 제 방보다는 이 방이 훨씬 편했다. 여기 있으면 아카시를 속박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식사도 휴식도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만 취할 수 있고, 잘 때는 본가의 고급 침대보다 미도리마와 함께 쓰는 2인용 침대가 어째서인지 더 잠이 잘 왔다.
하지만 미도리마 신타로는 어떨까.
매일 아침 아카시보다 먼저 일어나 식사준비를 마치고, 자신은 들어가지도 않을 목욕물을 정성스레 받고, 아카시가 원하는 대로 커피나 차를 끓이고, 아무렇게나 놓아둔 옷을 정리하고, 아카시의 머리를 말려주고, 그가 식사를 끝낸 그릇을 정리하고, 그런데도 동거 제안은 거절당한 채로, 변함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생활을, 그런 비참함을,
미도리마 신타로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뭐야, 갑자기 사람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내 얼굴에 뭐라도 묻은 거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사랑. 미도리마 신타로에게는 그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 아카시 세이쥬로를 위한 사랑과 헌신. 그러니 아카시가 미도리마에게 만의 하나라도 이런 생활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미도리마는 분명 고개를 저을 것이었다.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만 대답하고, 매우 곤란한 질문을 들었다는 듯 시선을 피하겠지.
하지만 아카시 세이쥬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더는 못 견디겠으니 헤어져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그래줄 수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아카시는 깨닫고 있었다. 미도리마는, 미도리마 신타로만큼은, 절대로 그 말을 입에 올리거나 하지 않는다. 결국 미도리마는 아카시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오직 그 이유 하나에 매달려, 아카시 세이쥬로에게 제 삶을 통째로 바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 관계가 시작된, 7년 전의 그 봄날부터 계속-
↑↓위아래 샘플의 내용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모르고 자란 소년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소년에게는 자신이 사랑해 마땅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존재가 있었다. 고귀하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소년이 이루는 모든 성과에 대해 칭찬의 말을 해주던, 상냥하고 상냥한 소년의 어머니가 그 대상이었다. 어머니가 있어 소년은, 아직 어린아이에게 부과하기에는 너무도 무거웠을 아버지의 과제들- 그리고 그 과제를 통해 자신이 내야 했던 갖가지 성과에서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다. 과제를 하다 지치면, 어머니의 무릎을 향해 달려가면 그만이다. 그러면 어머니는 늘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힘내라 말하며 웃었다. 괜찮아, 세이쥬로. 너라면 할 수 있단다. 넌 아버지와 나의 아이잖니. 그 목소리는 소년에게 힘이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동기였고, 난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타인의 애정이었다. 소년은 그 당시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는.
끝까지 병원에 가는 것을 거부한 어머니를 위해 저택에 불려온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피로 물든 침대 위에 어머니가 누워,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자신이 어머니에게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간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 준 것처럼, 사랑을 베풀어 줬던 것처럼, 제가 내민 손이 어머니에게 힘이 되고 생명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소년은 침대 위로 올라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바싹 말라비틀어져, 온기라고는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약하디 약한 손이었다.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 하고 자신이 제일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어머니의 손이 소년을 향했다. 소년의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닦아 주었다. 어머니. 울음 섞인 소년의 목소리에 그녀는 말했다.
“울지 말아요…… 이런 데서 울다니, 당신답지 않아요…….”
그 말에 소년은 어머니가 보고 있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죽음의 문턱에 서,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아볼 수 없었던 어머니가 지금 소년에게서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고 제일 존경했던 한 남자였다. 일에 바빠 아내의 임종이 다가온 순간에서도 회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남자. 소년의 아버지라는 이름의, 저주스러운 존재. 소년은 망연자실한 채 어머니의 손을 놓쳤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소년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무척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에서 느껴지는 것은 소년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보던 것은 소년의 아버지였다.
“평생을…… 사랑했어요.”
너무도 안쓰러운 고백과 함께 어머니의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뒤에 서 있던 집사가 눈물을 삼켰고, 의사가 무거운 목소리로 선언했다.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침대에 앉은 소년만이 남겨졌다. 소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너무도 평온한 미소를 지은 채 숨을 거둔 어머니를 껴안고 울부짖을 수도, 그녀의 마지막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저 차갑고, 냉정하게, 깨달았을 뿐이었다.
아,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현재 두 권 모두 수량조사 종료!
수량이 그렇게 많지 않고 위탁이니
수량조사 참가해 주신 분들은 부스에 꼭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일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