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국제청소년센터 대회의장에서 열리는 라쿠잔 고교 온리전
RAKUZAN~개벽의 제왕~
에서 판매되는 녹적 트윈지(글+그림) / 녹적 소설본 2종 예약 및 수량조사 받습니다.
세권 다 따끈따끈한 신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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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선입금예약 기간 연장했습니다!
(표지 일러스트 - 카나님)
(채색 버전은 조만간 추가됩니다)
<SSUM~요즘따라내거인듯내거아닌내거같은너~>
미도리마 신타로 x 아카시 세이쥬로
A5 떡제 / 48p / 5000원
*테이코 중학교 배경으로 녹적이 썸타는 이야기입니다. 달달한 이야기 중심.
*미도리마와 아카시가 서로에게 심하게 데레데레합니다.
-그림 샘플
*톤을 넣은 샘플은 차후 추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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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샘플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제 취향과 아카시 군의 취향은 일치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뭐, 상관없죠. 어떤 장르를 원하십니까? 예전에 추리 소설이나 의학 드라마 같은 걸 읽던 걸 본 것 같은데, 그 쪽 계열이 좋습니까? 아니면 과감하게 SF에 도전이라도…….
……예?
……아, 미안합니다. 너무 뜻밖의 요청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저도 요즘 그 계열은 전혀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요. 애초에 자주 읽지도 않지만요. 게다가 아카시 군이 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극단적인 것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실은 제 취향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아, 그렇지. 모모이 씨에게 물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녀라면 아카시 군이 원하는 책을 바로 찾아줄 것 같은데요.
……물론 저보다 더 놀란 반응이 돌아오는 건 아카시 군이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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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카시가 이상하다.
미도리마 신타로는 하루하루를 무척 규칙적으로 살아가는 소년이었다. 마치 스케줄을 미리 입력해둔 기계처럼, 매일매일을 그렇게 살아가지 않으면 멈춰 버리는 로봇처럼. 자연스레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그러한 뻑뻑함을 좋아하지 않았고,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고 그의 생활을 존중하는 가족들 역시 어디까지나 '존중'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미도리마가 그런 것을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은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어서, 그는 15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도 자신의 하루 스케줄을 방해받은 바가 없었다.
"좋은 아침이야, 미도리마."
그것을 처음으로 위협하는 존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교문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미도리마는 절로 발을 멈추고 말았다. 교문 앞 버스 정류장, 버스에서 쏟아져 내려와 또 교문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는 학생들 사이에서 그 어떤 미동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그의 눈 앞에 서 있엇기 때문이었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읽고 있던 책을 소리 나게 덮고는 미도리마를 향해 걸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미도리마가 소리 없이 식은땀을 흘리고 만 것은 그 날이 유난히 더웠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아카시는 미도리마의 그런 긴장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미도리마의 얼굴에 대어주었다.
"뛰어오기라도 한 거야? 왜 이렇게 땀투성이야."
"어……."
그건, 널 보고 너무 놀라서 잠시 멈춰서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는 죽어도 대답할 수 없는 미도리마는 그 자리에 굳어진 채 제 얼굴에 손수건을 토닥이는 아카시를 멍하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물론 아카시는 손수건을 떼는 그 순간까지도 미도리마의 얼굴이 조금 굳어져 있다는 건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었다.
"조…… 좋은 아침이라는 것이다, 아카시."
"……이제 와서 인사하긴 좀 늦었다는 생각 안 들어?"
"아, 그렇지…… 미안하다."
"미안하면 다음에는 바로 인사하도록 해. 들어가자."
그렇게 말한 아카시는 손수건을 주머니에, 읽고 있던 책을 가방에 돌려놓은 채 미도리마에게서 등을 돌렸다.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 아카시의 발걸음은 어딜 봐도 평소 아카시의 그것보다 훨씬 느려서, 뒤에 멍하니 서 있는 미도리마에게 '따라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쨌든 아침 연습을 위한 집합까지 10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를 따라가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도리마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몇 발자국 만에 아카시를 따라잡았다. 제 옆에 나란히 선 미도리마의 존재에 아카시는 빙긋 웃고서, 그제야 평소의 스피드로 걷기 시작했다. 이런 아카시의 모습도 벌써 닷새 째다. 다섯 번의 데이터가 있으면 제아무리 눈치가 없는 미도리마라도 '설마' 라고 생각했던 것을 확신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다.
"아카시…… 내게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미도리마 신타로의 안타까운 점은, 애초에 '설마' 라고 생각했던 것의 전제부터가 틀렸다는 점에 있었다. 당연히 아카시는 예상 외의 질문을 받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미도리마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카시는, 미도리마의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두 눈에 가득 담은 순간 풋, 하고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왜?"
"왜냐니 …… 벌써 닷새 째라는 것이다. 네가 이렇게 날 기다린 게."
"그게 뭐?"
"말 돌리지 말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바로 말하라는 것이다. 압박이 장난이 아니야."
"용건 없이 기다리면 안 되는 건가?"
"……."
미도리마는 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안 되느냐고 묻는다 해서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아카시가 아침 시간을 허비해 가면서 교문 앞에서 미도리마를 기다리는 건 아카시의 마음대로이니 자신이 간섭할 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가까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카시는 왜 그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질문까지 하는 것인가? 미도리마는 해결되기는 커녕 점점 추가되기만 하는 의문에 안경 너머로 두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실망인걸, 미도리마. 난 그냥 너와 함께 등교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 그럼 적어도 몇 시에 어디서 만나자고 말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 그렇네. 그 생각을 못 했어. 그럼 내일부턴 매일 일곱 시 반에 그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할까?"
"이봐……."
"물론 미도리마가 나와 함께 등교하는 걸 불편하게 여긴다면, 내 제안은 거절해도 좋아."
아카시가 대수롭지 않게 건넨 그 한 마디에 미도리마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세게 쥐었다. 거절하라고?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아카시의 화법은 치사하기 그지없다. 빠져나가기 힘든 구석으로 상대를 몰아 넣고서, 상대의 몸집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가기 힘든 길만 살짝 열어준 다음 '내 몸에 닿지 않도록 빠져나가 보라'는 불가능한 퀘스트를 주는 것이다. 게다가 아카시 본인은 그것이 자신이할 수 있는최대한의 양보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눈치라고는 개미 눈물만큼도 없는 아오미네 다이키나 무라사키바라 아츠시라면 꾸역꾸역 그 길로 몸을 밀어 넣다가 패배를 자초하게 될 터였지만, 미도리마 신타로는 적어도 그들보다는 눈치가 있는 편이었다. 동시에, 그들보다는 훨씬 더 아카시 세이쥬로라는 인간을 잘 알았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아무 목적 없이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서 전국 중학교 대회에서의 우승을 축하하는 말에도 건성으로 대답한다거나,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삼류 부원에게 관심을 갖는다거나, 농구를 시작한 지 2주밖에 되지 않는 부원을 1군으로 영입하자는 말을 꺼내거나. 미도리마 신타로는 그런 아카시 세이쥬로의 변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 온 사람이었고, 처음에는 납득이 되지 않았던 그 수많은 행동들에 뭔가 이유가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다음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갑자기 '친구' 와 함께 등교하겠다고 나서는 것에도 분명히 이유는 있을 것이었다.
'다만 그 이유가 뭔지 …… 당연하지만 이번에도 전혀 짐작이 가질 않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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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내용이 그렇게 건전한 내용인 것만은 아니므로 취급시에는 주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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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일러스트 SOWON님)
<彼と僕と俺の恋 그와 나와 나의 사랑>
Kuroko's Basuke Unofficial Fanbook#45.
미도리마 신타로 x 아카시 세이쥬로
A5 떡제 / 72~74p / 선입금 예약가 7,000원 / 일반 구매가 7,500원
*라쿠잔 고등학교에 진학한 미도리마와 그를 지배하려 하는 아카시(보쿠시)의 이야기입니다.
*쿠로코의 농구 애니메이션 3기 분량, 원작 완결 분량의 네타 아닌 네타가 있습니다.
*아카시의 정신상태가 매우 불안정합니다. 불안정하다는 소리로는 표현 안 될 정도로 불안정합니다.
*샘플
맹세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네게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어떤 길을 걷더라도,
나는 너 한 사람만을 영원히 사랑하겠다.
***
“거기, 너.”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눈에 띄는 주황색 학교 체육복을 입은 소년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간만에 받는 것 같은 적대적인 시선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자, 그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하지만 그런 감정을 결코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겠다는 듯, 소년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너, 테이코 중학교 출신의 미도리마 신타로지?”
“……날 어떻게 알지?”
“중학교 때 농구 좀 한 녀석 치고 그 이름 모르는 녀석 없어.”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과거의 흔적에 그는 더욱 인상을 썼다. 자신에게는 버리고 싶은 과거인 그것을 대놓고 들이대 오는 상대는 지금의 그에게 있어선 불쾌한 상대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그렇게 반문하며 뻔뻔한 얼굴을 하자 소년의 비웃음 가득한 미소가 더욱 심해졌다.
“나, 미타카 중학교 출신 타카오 카즈나리라고 해. 지금은 슈토쿠 고등학교의 포인트 가드지.”
“……그래서?”
“그 말투를 보아하니 넌 날 기억 못 하나 보네. 나, 1년 전에 너하고 붙어서 아주 크게 깨진 적이 있었거든. 설욕전을 해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서 영광이다.”
“…….”
당연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기억력은 과거 동료들에 비하면 무척 뛰어난 수준이었지만, 과거 스쳐지나간 상대들을 하나 하나 기억하고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것이 자신과 맞부딪혀 패배한 전적이 있는 상대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그 말은, 바꾸어 말하자면, 과거 시합에서 만난 이들 중 누구 하나 그의 기억에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는 소년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깨달은 순간부터 매우 기분이 나쁜 상태였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그런 말로 소년의 적의를 맞받아치려는 순간이었다.
“신타로, 여기 있었구나.”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세게 돌리자, 자신과 똑같은 체육복을 입은 붉은 머리의 소년이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집합 시간이야. 그렇게 말하며 다가온 그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단팥죽 캔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식성도 독특해. 겨울이라 날도 추워졌는데, 굳이 차가운 단팥죽을 고르다니.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러다 문득 그의 예리한 시선이 자신에게 적의를 발산하던 소년에게 향했다.
“이쪽은? 아는 사이야?”
“아니, 오늘 처음 만났다는 것이다.”
“아, 그러니까 중학교 때 만났다니깐! 내 말 듣긴 했어?”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의 것은 방금 전 소년의 적의를 마주했을 때 지었던 표정과는 그 질이 달랐다. 그의 찡그려진 미간은 엄연히, 자신의 옆에 서서 소년의 적의에 흥미를 보이는 것 같은 붉은 머리의 소년에게 향해 있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저 소년은 전갈자리임이 틀림없었다. 오늘의 전갈자리 순위는 최하위, 상성이 나쁜 별자리는 사수자리였으니까. 그리고 사수자리의 그는, 자신의 앞으로 나서 소년에게 빙그레 웃어보였다.
“대충 알겠어. 예전에 신타로와 시합한 적이 있었다던가?”
“그래! 그러니까 이번에는 반드시 이겨주겠어!”
그만 닥치고 물러가는 게 좋았을 텐데. 왜 이런 타이밍에서 저 말을 꺼냈을까. 그는 진심으로 소년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그 동정의 눈빛은, 비참한 사실이었지만,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이기도 했다. 모든 퍼즐 조각이 들어맞은 지금 시점에서, 제 옆에 서 있는 소년에게서 튀어나올 말은 눈앞의 소년과 자신에게 확실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어쩌지? 신타로에게 설욕전을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때가 좀 늦었어.”
“뭐라고?”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매니저는 시합에 나갈 수 없으니까.”
그렇지? 하며 그가 자신에게 동의를 구해 왔다. 어서 내 말을 긍정하라고 말하는 듯한 매서운 눈빛에 그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매니저라고……?’ 라며 해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냈다.
“그래. 미도리마 신타로는 우리 라쿠잔 농구부의 매니저야. ……다른 이름은, 비참한 패배자라고 하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자신의 팔짱을 껴 왔다. 자, 가자. 더 이상 상대할 필요 없어. 그 작은 동작에서 나오는 무언의 명령에 그는 말없이 수긍했다. 자신을 잡아당기는 작은 팔에 이끌려 소년의 앞에서 돌아섰을 때, 그들의 뒤에서 분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납득 못해! 미도리마 신타로가 농구를 그만두다니!”
“포기할 줄 모르는 녀석이네. 어때, 신타로? 네 입으로 직접 말해주지 않을래?”
제안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그 역시 확연한 명령이었다. 자신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명령. 반항할 수 없는 졸은, 왕의 명령대로 천천히 소년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방금 들은 대로라는 것이다. 나는 농구를 그만두었어.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그리고 졸의 입에서 나온 비참한 한 마디에, 그의 왕은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프로포즈를 들은 양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아. 그 미소에서 흘러나온 그의 진심에, 비참함을 속으로 곱씹으면서 미도리마 신타로는 몸을 돌렸다. 그의 옆에 나란히 서서 걸어가는 그의 왕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정한 미소를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저 체육복은 슈토쿠 고등학교지? 잘 됐네. 이걸로 완전히 침묵시켜 줄 이유가 하나 늘었어.”
눈앞의 승부만을 탐하는 괴물의 표정을 짓는 그의 왕에게서 그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앞을 보았다. 그래. 그렇군. 조용히 긍정하자, 팔짱을 낀 채 그가 자신에게 몸을 기대 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다정한 연인처럼 보일 그 행동거지가, 그에게는 자신의 전신을 옭아매는 족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족쇄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존재는 다정함이라고는 요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미소와 함께 그의 팔을 놓아주었다.
“자, 가자. 승리의 시간이야.”
비록 네게는 관계 없는 단어겠지만.
테이코 중학교를 졸업하기 한 달 전.
미도리마 신타로는 농구를 그만두었다.
“좋은 아침이야, 신타로.”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자 방에서 막 나오던 미도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아침이라는 것이다. 반듯하게 차려입은 회색 셔츠와 팔에 두르고 있는 연회색의 교복 재킷은 자신이 몸에 걸치고 있는 것과 정확히 같은 옷이었다. 어깨에 둘러메고 있는 가방에는 자신의 것과 같은 라쿠잔 고등학교의 체육복이 들어 있었지만, 연습을 위해 필요한 이너 셔츠는 없었다. 그 대신 선수들의 연습량을 기록하는 차트와 아침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그가 처리해야 할 서류 같은 것은 들어 있을 터였다. 스스로도 이상하다 느낄 정도의 허영심을 만족시켜 주는 그 차림에 아카시 세이쥬로는 빙그레 미소를 띠웠다.
“어젯밤엔 방문을 걸어 잠갔던데, 너무한 거 아니야? 내가 기껏 찾아가 줬는데.”
“……미안하다. 집중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괜찮아. 편곡 중이랬지? 그건 언제쯤 완성될 예정이야?”
“내일이면 다 될 거다. 완성되면 들려주지.”
“기대할게.”
드넓은 저택의 복도를 그와 함께 걸어가면서, 아카시는 가만히 그의 팔짱을 껴 보았다. 팔을 붙잡는 순간 경직된 미도리마의 몸은 팔짱을 낀 아카시가 가볍게 팔에 몸을 기대 올 때까지 어떤 변화도 없이 굳어진 그대로였다. 몸에 힘 좀 풀지 그래. 딱히 널 잡아먹겠다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긴장을 풀어 주려 일부러 그런 말을 던졌음에도 딱딱해진 그의 몸은 원래의 부드러움을 되찾지 못했다. 그 경직된 태도까지도 온전히 마음에 들어, 아카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팔을 놓아주었다. 계단을 내려옴과 동시에 두세 명의 고용인들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작은 도련님, 미도리마 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그 인사에 손을 들어 화답해주고 아카시는 앞서 식당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 분의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다. 샌드위치와 스프, 밀크 티로 구성된 양식 아침 식사는 아카시의 몫, 밥과 된장국, 절인 반찬으로 구성된 일식 아침 식사가 미도리마의 몫이다. 낫토를 싫어하는 미도리마를 위해 일부러 낫토만큼은 빼놓도록 명령한 것도 벌써 반 년 전의 일이다. 이 저택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아카시 세이쥬로의 명령을 철저하게 따른다. 그리고 그것은 미도리마 신타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카시가 자리에 앉을 때를 기다려 그 맞은편에 자리하는 것도 모두 아카시의 명령 때문이었다. ‘노예’가 ‘주인’보다 먼저 자리에 앉는 건 예의 없는 행동이야. 그렇게 말했을 때 미도리마는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었다.
“부비 조달 신청서는 어떻게 됐어?”
“전부 작성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차 안에서 점검해 줬으면 좋겠군.”
“아니. 네가 완벽하게 작성했다면 굳이 내 검토를 거칠 것까지도 없어. 그대로 제출하도록 해.”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4번 골대 상태가 별로 좋지 않던데. 에이키치가 봐주지 않고 덩크를 넣곤 하니까.”
“그것도 이미 확인했다는 것이다. 감독에게 보고했더니 오늘쯤 교체될 거라고 하더군.”
“완벽해. 역시 네가 있으면 다르네. 다른 매니저들은 필요 없겠어.”
칭찬이되 결코 칭찬이 아닐 말에, 미도리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된장국을 한 모금 입에 머금는 것으로 옅게 불만이 드러난 표정을 숨기고, 미도리마는 천천히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움직이는 왼손에는, 고작 반 년 전까지만 해도 언제나 하고 있었던 테이핑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 있는 것은 수십 장의 서류를 작성하느라 중지 쪽에 살짝 굳은살이 배인, 그리고 다시 피아노를 치게 된 탓에 손끝이 조금 단단해진, 농구와는 완전히 관계 없는 사람의 손이었다. 아카시는, 적어도 지금의 아카시 세이쥬로는, 이전보다는 지금의 미도리마의 손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는 더 이상 손톱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 슛의 정확도를 체크하며 그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계속해서 공을 던져댈 필요도 없다. 아카시 세이쥬로라는 절대자에게 완전히 패배를 인정하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어 충성을 맹세한 이에게 공을 잡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만족스레 웃고 아카시는 밀크 티에 입술을 댔다. 뜨거운 것을 마시지 못하는 아카시에게 맞춰 적당히 식어 있는 연갈색 액체를 목 너머로 넘긴다. 그와 거의 동시에 식당 문이 열리며 고용인이 그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작은 도련님, 미도리마 님. 차가 준비되었습니다.”
“흐음, 오늘은 좀 빠른데. 신타로, 식사는 다 했어?”
“너야말로 좀 더 먹어 두는 게 좋지 않겠나.”
그렇게 말하는 미도리마의 시선이 반도 먹지 않은 아카시의 샌드위치로 향했다. 자신의 몸을 염려하는 듯한 그 행동은 사실 월권 행위에 비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아카시는 그것이 이미 미도리마 신타로의 버릇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아무런 꾸중도 하지 않은 채 웃으며 답하는 것이다.
“난 네가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불러.”
“……솔직하게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다고 말하지 그래.”
“부정하진 않을게. ……어젯밤엔 네가 방문을 걸어 잠근 덕분에 체력 소모도 피했고.”
그 말에 미도리마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언제나처럼 준비를 해 두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교복 재킷을 팔에 끼워 넣는 미도리마를 따라 아카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만 그 자리에 멈춰 있어. 그 말에 미도리마는 한 쪽 팔만 재킷에 끼워 넣은 상태로 자리에 멈춰섰다. 미도리마의 앞으로 다가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재킷을 어깨에 고정해 주고, 아카시는 그의 몸을 그대로 아래로 잡아당겼다. 살짝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을 때 미도리마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다만 방금 전 팔짱을 끼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몸이 살짝 굳어졌을 뿐이었다.
“오늘 밤은 문을 열어놓도록 해. 어젯밤엔 추워서 제대로 자질 못했으니까.”
“……알았다는 것이다.”
“나가도 좋아.”
허락이 떨어지자, 미도리마는 재킷을 온전히 입고 가방을 도로 어깨에 맸다. 그 순간까지도 충실히 문 앞에 서 있는 고용인을 따라 먼저 식당을 나가는 미도리마를 바라보다가, 아카시는 슬쩍 그의 식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 정도 남긴 밥과 반찬을 보며 쓰게 웃는다. 오늘의 식사 담당자는 이 식판을 보면 혼비백산하게 될 것이다. 동거인의 식습관-원래 소식파인데다 특히 아침에는 그 양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자신의 어린 주인이 식당을 발칵 뒤집고 그의 앞에서 계약서를 찢어버릴 것이 분명했으므로. 그러나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그들의 주인, 아카시 세이쥬로는, 이 집에 있는 어떤 고용인보다도 반 년 전 새로 얻은 자신의 충직한 ‘노예’를 더 아꼈다. 그리고 그것을 그에게- 미도리마 신타로에게 과시하듯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다. 어찌 됐든 부엌 담당자가 한 달 만에 또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는 미래는 고정되어 있는 셈이었다.
아카시는 재킷을 입고 식당을 나섰다. 다녀오십시오, 작은 주인님. 고개 숙여 인사하는 충직한 집사에게 요리장 교체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고서 현관을 나서면, 차 앞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미도리마 신타로가 고개를 들고 차문을 열어 준다. 역시 집사도 잘라 버릴까? 신타로가 있으면 충분할 것 같은데. 미도리마의 에스코트를 받아 차에 오르면서, 아카시는 빙그레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미도리마 신타로의 하루는 지극히 단조롭다.
등교하면, 우선 농구부 연습에 참여한다. 그의 정식 직책은 1군 매니저이지만 그는 본디 자신의 임무보다 몇 배나 되는 일을 맡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원래는 주장이나 코치가 해야 할 2, 3군 멤버들의 실력 향상 체크이다. 연습이 시작되면 그는 감독의 옆에 서서 그 높은 시야로 체육관의 구석구석을 살핀다. 때로는 2군과 3군 코치들과 대화를 나누며 부원들의 실력을 조금씩 체크해, 주장과 감독에게 보고한다. 그가 특히 신경 써서 보는 것은 슈팅 가드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인데, 그것은 그가 한때는 그 분야의 No.1이라 불렸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농구공을 만지지 않는다. 자신의 슛 폼을 가르쳐 주지도, 잘못된 폼을 지적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코치의 역할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저 연습을 보고, 평가를 내린다. 그의 평가는 언제나 객관적이고 정확해서, 아카시는 그 결과를 매우 깊게 신뢰하고 있었다. 바꿔 말하자면, 미도리마가 있으면 굳이 아카시가 2군, 3군 멤버들에게까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인선에 대해서 본디 부주장인 미부치 레오는 가끔 불만스러운 말을 던지고는 하지만, 아카시의 명령이라는 말 한 마디에는 주저없이 꼬리를 내린다. 아카시 세이쥬로가 라쿠잔에 세운 그만의 왕국은 미도리마 신타로의 보조로 완벽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봐도 옳았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부를 둘러보고 나면, 본디 매니저의 일인 부품 정리와 그에 대한 보고를 감독에게 끝마친 뒤 그는 먼저 체육관을 떠난다. 피아노 연습을 하기 위해서이다. 보통 두 개의 동아리에 동시에 소속되어 두 분야의 일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미도리마 신타로는 그것을 매우 간단하게 해낸다. 아니, 말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범인은 쫓아올 수도 없을만치 끈질기고 범상치 않은 노력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었다. 라쿠잔 고등학교의 관현악부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그는 피아노의 천재라 불리던 2학년 여학생을 자신의 재능 앞에 무릎 꿇렸다. 애초에 미도리마는 예술적 재능 역시 슛 실력 못지않게 뛰어났던 인간이다. 중학교 때 피아노를 그만두고 농구를 시작하지만 않았더라도 국제적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었으리라. 아카시는, 때로 그것이 아깝다고 생각하면서도 미도리마가 당시 농구를 택해 준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미도리마 신타로라는 원석을 제 옆에 둘 수 없었을 테니까. 물론 이런 말은 미도리마에게 하지 않는다. 왜인지는, 아카시 스스로도 확실히 말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아마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지금이라도 피아노 쪽의 재능을 빛내 각계 전문가들에게 주목을 받고, 아예 그 길로 떠나버린다면 그를 평생 자신의 곁에 둘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도리마 신타로의 연주는 아카시 세이쥬로만 들을 수 있으면 된다. 새장 속에서 노래하는 카나리아처럼. 아카시가 미도리마의 관현악부 입부를 허락한 이유는 그저 그에게 아주 약간의 자유를 주기 위함이었다. 더 나아가면, 미도리마 신타로의 그러한 ‘자유’ 역시 아카시 세이쥬로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그에게 인식시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실제로 미도리마가 피아노 연습을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려면 아카시의 허락이 필요했다.
“아카시, 난 이만 가 봐도 되겠나.”
바로 지금처럼.
휴식 시간에 땀을 닦으며 매니저가 가져다 준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아카시에게 미도리마가 다가왔다. 자신의 일을 이미 완벽하게 끝내 놓았다는 후련함이 그의 얼굴에 맴도는 것을 보며, 아카시는 잠시 어떻게 할까 생각한다. 평소라면 아무 생각 없이 그래도 좋다고 말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사정이 좀 다르다. 어젯밤 미도리마는 아카시가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것을 깨끗이 무시했었다. 그에 대한 ‘벌’을 줄지 말지 고민하던 아카시는, 자신들을 흘깃 쳐다보는 미부치 레오의 시선-노골적으로 말하자면「뭐야, 쟤! 또 세이쨩한테 붙어 있고!」라는 목소리가 들릴 것 같은 시선-을 느끼자 입을 열었다.
“안 돼.”
“……안 되는 건가?”
“그래, 안 돼. 오늘은 연습이 끝날 때까지 여기 있어.”
그 단호한 명령에 미도리마는,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인 채 차트를 다시 집어든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체육관에 서 있기보다는, 구색이나마 매니저의 모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태도다. 그것을 정확히 읽어낸 아카시는 미도리마의 손에서 차트를 빼앗았다. 뭐 하는 거냐는 미도리마의 의문 가득한 시선을 즐기며 아카시는 입술 사이로 비웃음을 흘렸다.
“일은 다 끝났잖아? 굳이 이런 걸 들고 있을 필요가 없지.”
“……그럼 보내 달라는 것이다.”
“신타로, 난 여기 남아 있으라고 명령했어.”
‘상‘과 ‘벌‘. 흔히 당근과 채찍으로 비유되는 두 가지의 평가를 아카시는 교묘히 이용할 줄 알았다. 상을 줄 때는, 네가 조금만 더 잘 하면 이것보다 좋은 것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슬쩍 내비쳐 준다. 벌을 줄 때는, 네가 잘못해서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쳐 준다. 아카시 세이쥬로의 그러한 규칙은 그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아끼는 노예에게도 다를 게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 연습이 끝날 때까지 거기 가만히 서 있도록 해.”
심심하겠지만, 이 정도는 감당해야지. ‘벌’ 이니까.
“……알겠다는 것이다.”
“……신타로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제 2 체육관 시합은 이미 끝났을 텐데.”
운동화의 끈을 단단히 묶은 채 그렇게 물었을 때 부원들은 저마다 아카시의 눈치를 볼 뿐 바로 답을 해주지 않았다. 물론 그 녀석이 어디서 뭘 하든 내가 알 바 아니라는 미부치를 제외하고 말이다. 미도리마 신타로는 라쿠잔 고등학교 농구부에 매니저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부원들과 썩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대놓고 그에게 적대감을 내비치는 미부치는 물론이고, 그 실력을 가지고도 농구를 계속하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을 가진 부원들이 꽤 많은 모양이었다. 그나마 웃는 낯으로 그를 대해주는 건 하야마 정도였고, 남에게 적개심을 그다지 품지 않는 성격인 네부야는 미도리마 특유의 딱딱한 사고방식이 잘 맞지 않는다고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한 일도 있었다. 그 외에 미도리마에게 예의를 갖춰 주는 사람이라면 남들에게 관심이 1g도 없는 마유즈미 정도일까.
“너 화장실 간 사이에 카메라 반납하러 왔고, 한 10분쯤 전에 음료수 산다고 나갔다.”
아니나다를까, 미도리마의 행방을 가르쳐 준 것은 마유즈미 쪽이었다. 보아 하니 부원들이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은 미부치의 기분이 썩 좋지 않음을 읽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레오가 발끈하면 좀 시끄러워지긴 하지만, 내 말을 무시할 정도의 힘이 있는 줄은 몰랐는걸. 위계질서를 명백히 할 필요가 있겠어. 미부치의 기를 죽일 만한 악마의 계획을 두세 개 떠올려 보며 아카시는 바로 미도리마를 찾으러 나섰다. 물론 미부치에게 차 앞에 부원들을 집합시켜 두라는 지시를 내린 뒤의 일이었다.
마실 걸 사러 갔다는 정보만 있으면 미도리마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차가운 단팥죽을 파는 자판기는 그리 흔하지 않았고, 윈터컵 본선이 열릴 예정인 이 경기장에서라면 해당하는 자판기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 자판기를 찾아 코너를 돌았을 때 아카시는 어렵지 않게 미도리마의 커다란 체격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말을 걸며 미도리마의 옆으로 다가서려는 순간이었다.
“저는 미도리마 군의 저의를 전혀 읽을 수가 없습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도리마의 몸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아니, 사실 가려지지 않았어도 쉽게 찾아낼 수 있었을지는 의심이 갈 정도로 존재감이 흐린 옛 동료의 목소리였다. 약간 노기가 서린 듯한 쿠로코 테츠야의 목소리에 아카시는 저도 모르게 돌아온 코너로 몸을 숨겼다. 딱히 숨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고, 딱히 쿠로코의 앞에서 미도리마의 현재 위치를 드러내는 데 거부감을 느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리 해야 될 것 같았다. 적어도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 쿠로코 테츠야가 저렇게 노골적으로 분노를 드러내는 이유를 알아내기까지는.
“미도리마 군은 저를 놀리는 건가요?”
“못 보던 사이에 상당히 속이 꼬였군. 그 말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니.”
“그 말을 한 게 네가 아니었다면 평범한 응원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적어도 무라사키바라나 아오미네가 하는 말보다는 설득력 있게 들렸을 거다만?”
“차라리 그 두 사람의 말이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오겠네요.”
“응원을 해 주고도 그런 말을 듣다니, 내 신뢰도는 어지간히 낮은 모양이군.”
“신뢰? 그런 게 우리 둘 사이에 있었습니까?”
살짝 짜증이 났다. 저 진척 없는 대화를 자신이 엿듣고 있다는 떳떳하지 못한 상황에도 그랬고, 그걸 다 감수하고 있는데도 결정적인 말이 나오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쿠로코의 저 맹렬한 비난이 무엇 때문인지를 대충 알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리 큰 이유가 아니었다. 방금 전과 마찬가지였다. 그저 자신이 모르는 어떠한 이야기를 미도리마와 다른 사람이 하고 있다는 것이 거슬렸다.
무슨 일에 있어서든 우선 순위로 둬야 할, 이 나를 제쳐두고.
“신타로.”
그래서 아카시는 다시 그들에게로 다가섰다. 미도리마의 등 너머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한 쿠로코가 흠칫 놀라는 것이 느껴져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그야 인상을 있는 힘껏 찌푸리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쩐지 쿠로코의 시선에는 그보다 더한 이유가 깃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방금 전 느꼈던 감정- 미도리마 신타로와 쿠로코 테츠야의 사이에 자신이 완전한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데서 온 소외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카시가 지금 얼굴에 드러내고 있는 것은 그런 감정을 자신에게 느끼게 한 미도리마를 향한 분노였다. 그러나 천천히 뒤를 돌아 자신을 발견한 미도리마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고, 오히려 안절부절못하며 아카시의 시선을 피하는 것은 쿠로코 쪽이었다. 아카시가 완전히 그들에게 다가왔을 때에야 겨우 안정을 찾은 쿠로코는, 그럼에도 여전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아카시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아카시 군.”
“아, 그래. 그것보다 신타로. 대체 뭣 때문에 이렇게 오래 시간을 끄는 거지?”
“미안하다.”
아카시가 쿠로코의 인사에 대충 답해 준 것은 자신의 분노를 미도리마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미도리마는 미안하다는 한 마디 외에는 하지 않았고,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반면 쿠로코는 아카시가 대놓고 자신을 무시한 데 대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음과 동시에 미도리마를 약간 경악한 듯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쿠로코의 심정을 조금 난폭하게 설명해 보자면, 이것이었을 게다.
「미도리마 군, 미쳤습니까?」
“……지각에 대한 벌은 교토로 돌아가면 주도록 하지. 됐으니까 따라와. 부원들이 기다리고 있어.”
“알았다는 것이다. 그럼 다음에 보지, 쿠로코.”
“예에.”
떨떠름하게 대답하는 쿠로코의 심정은 아카시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쿠로코가 ‘그렇게는 말하지만 널 다시 보고 싶진 않군요’ 라는 뜻에서 저런 반응을 보여줬다면, 아카시는 ‘다시는 둘을 만나게 할 생각 따위 없다’ 라는 뜻에서 인상을 찌푸린 것이었다. 아카시는,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유치하다는 건 알았지만, 쿠로코에게는 인사도 하지 않고 미도리마의 손을 잡아당겼다. 쿠로코가 서 있는 자판기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걸어와, 비상계단을 밟아 내려가는 내내 아카시는 미도리마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카시가 자리에 멈춰 선 것은 계단을 꽤 내려와, 주차장으로 가는 입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장소에서였다.
“무슨 얘길 그렇게 오래 했지?”
“요센과의 시합에 대한 감상을 얘기했을 뿐이다.”
“그게 10분이라는 시간을 쓸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나?”
“10분이라니. 실제로 쿠로코와 대화한 시간은 5분 남짓…….”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왜 화내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이제 아카시는 짜증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저, 쿠로코와 대화하는 장면을 본 것 뿐이다. 그 대화 전문을 듣지 못한 것뿐이지, 방금 전 엿들은 이야기와 미도리마의 해명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미도리마의 저 덤덤한 얼굴이,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표정이. 아카시는 이제 저 얼굴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애 최초의 파괴충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카시가 그렇게 속을 까맣게 태워 가며 충동을 억누르는 상황에서도 미도리마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았고, 결국 아카시는 손을 들었다.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미도리마의 뺨과 아카시의 손바닥이 동시에 붉게 부어올랐다. 비뚤어진 안경을 고쳐 쓰고, 그제야 미도리마는 천천히 아카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다는 것이다, 아카시.”
“……뭘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보지 그래.”
“다시는 네 허락 없이 네 옆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네 옆을 5분 이상 떠나 있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또?”
“…….”
“다른 건 없어?”
“……네 허락 없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분했다. 마치 자신이 노예에 지나지 않는 미도리마 신타로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듯한 대답들도 그랬지만, 자신이 서운했던 부분을 미도리마가 정확히 찔러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 난 네가 내 옆에서 떨어지는 게 싫어. 나 외의 다른 사람을 그렇게 오래 눈에 담는 게 싫어. 내 허락 없이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대화를 나와 관계 없는 사람과 나누는 것도 싫어.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건 마치 어린애 같아서 더 싫어.
그리고 넌 그런 내 속을 전부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화를 낼 때까지 그런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하지.
“……됐어. 이젠 일어나. 누가 보면 곤란해.”
허락이 떨어지자 겨우 미도리마가 바닥에서 무릎을 떼었다. 돌아가자.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린 아카시의 손을 붙잡고 미도리마가 살짝 손바닥 위에 입술을 맞췄다. 미안하다는 것이다. 나지막히 들려온 목소리에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그것은 아카시 세이쥬로가 ‘아카시 세이쥬로’의 표면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최근 고민이 있는 것 같군.”
“……왜 그렇게 생각해?”
“네가 다음 수를 놓지 않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것 자체가 흔하지 않은 일이니까.”
미도리마 신타로의 지적에 아카시 세이쥬로는 멍하니 눈을 떴다. 들켰네. 나지막이 중얼거린 아카시는 말을 옮겼다. 그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최선의 수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당연히 미도리마는 눈을 흘겼다. 아카시. 목소리를 잔뜩 아래로 깔고 미도리마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의 기분이 무척 나쁘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긴 불쾌할 만도 할 것이다. 미도리마 신타로의 가치기준은 어떤 일에 인사를 다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정해진다. 그리고 아카시 세이쥬로는 미도리마의 가치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존재였다. 그들이 3년이 넘도록 교우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었을 정도다. 지금 아카시의 행동은 그 전제를 처음부터 박살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아카시도 자신의 수가 미도리마의 기분을 나쁘게 할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 변명 없이 어깨를 으쓱했고, 미도리마는 불만을 감추지 않은 채 다음 수를 두었다.
“……형편없네.”
“시작한 건 네가 먼저였다는 것이다.”
“악수만 계속 둬 가다가 나중에 전황을 뒤집자는 생각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입 밖에 내지도 않았겠지.”
“…… 미도리마는 날 너무 잘 안단 말이야.”
“진지하게 둘 생각이 없으면 오늘 대국은 여기까지 하고, 무슨 고민이 있기에 내 승부에서 고개를 돌리는지 설명해 보라는 것이다.”
“너무 화 내지 마.”
후후, 하고 웃은 아카시는 장기말을 천천히 치우기 시작했다. 물론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미도리마가 고집을 부릴 거라는 판단에서 나온 행동이었고, 예상대로 미도리마는 아카시가 판을 정리해 버리는 것을 말리지 않은 채 팔짱을 끼고 아카시를 바라보았다.
“아카시. 그저께 내가 혼자 연습하고 있었을 때 체육관에 왔었지?”
“……그것도 알고 있었어?”
“소거법으로. 인기척이 느껴져서 돌아봤을 땐 아무도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다. 쿠로코라면 애초에 인기척을 낼 리도 없고, 키세나 모모이라면 조용히 있을 리가 없고, 아오미네와 무라사키바라는 최근 체육관에 잘 오지도 않으니까. 남는 건 너밖에 없지 않은가.”
“응, 보고 있었어.”
깔끔하게 그 사실을 인정한 아카시는 장기 세트를 그대로 제 가방 안에 넣었다. 턱을 괸 채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었을 때 아카시는 ‘고민이 있는 것 같다‘는 미도리마의 말을 긍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는 미도리마가 인상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네게는 말해두려고 했지만, 슛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 그저께도 코트 절반 이상의 위치에서 연습했었지.”
“어쩌면 코트 끝에서도 슛을 쏠 수 있을지 몰라.”
“내가 보기에도 그래. 열 번 중 세 번은 성공했었고.”
“네가 불안하게 여기는 건 그 점인가?”
미도리마가 던진 돌직구에 아카시는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이야말로 미도리마의 말을 긍정하는 답이었고, 미도리마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네가 불안해할 것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그건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내 무기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우리 팀의 리더는 너다.”
“……하지만 그것도 올해까지지.”
“너답지 않은 말을 하는군. 설마 아카시 세이쥬로의 입에서 내가 두렵다는 말이라도 나오려는 건가?”
“설마.”
“그럼 대체 뭐가 불안한 거냐.”
“……넌 몰라.”
아카시 세이쥬로는 말끝을 흐리고 미도리마의 시선을 피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대로 부실을 나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미도리마의 몸도 움찔했지만, 아카시가 다음에 취한 행동은 의자를 끌어와 미도리마의 옆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아카시? 의문 가득한 중얼거림을 뒤로한 채 아카시는 천천히 미도리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것은 3년 간의 교류 사이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어깨에 기대어 누운 것이 아니라, ‘약한 모습’ 을 보여주는 것이. 지금쯤 미도리마의 얼굴은 의아함과 놀람으로 가득 물들었을 것이다. 그 정도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3년, 아카시 세이쥬로는 테이코 중학교의 정상에 군림해 ‘기적의 세대‘를 이끌었다. 1학년 때는 주장이 다른 사람이었어도 1학년들의 실질적인 리더는 그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주장의 자리를 물려받으면서 그의 리더 자리는 더욱 완벽한 것이 되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 사이 아카시 세이쥬로는, 굳건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을 몇 번이고 느껴야 했다. 원인은 방금 전 미도리마가 입 밖으로 꺼낸 그 말이었다.
「아오미네와 무라사키바라는 최근 체육관에 잘 오지도 않으니까.」
아오미네 다이키와 무라사키바라 아츠시. 불안의 전조는 그 두 사람에게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잃고 싶진 않았어.”
“잃는다니? 뭘?”
“너희들을, 말이야.”
재능이 점점 자라감에 따라 찾아온 아오미네 다이키의 소모는 아카시 세이쥬로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따라올 자가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그에게 농구는 더 이상 즐거운 것이 아니었으며, 주체할 수 없이 치솟았던 농구에의 애정도 천천히 식어 가고 있었다. 연습에 나오지 않는 아오미네를 위해 아카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그와 가장 친한 쿠로코와 모모이에게 설득을 맡기는 것뿐이었다. 주장의 명령으로 연습에 나오라고 하면 아오미네는 모습을 드러내기는 할 터였지만, 그것이 아오미네가 느끼는 농구에의 애정을 회복시켜주지는 못했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아오미네 다이키가 아닌 이상 그의 허무함을 구해 줄 수 없었다. 남는 선택지라고는 자신이 그의 적이 되어 주는 것뿐이었다.
무라사키바라 아츠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남들보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본디 매우 오만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쩌면 귀찮음이 앞섰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미도리마 신타로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자신의 능력에 취해 그것을 발전시킬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그런 그의 마음가짐을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권위와 실력을 내세워 그를 찍어 누르고, 자신의 말에 복종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걸 위해서는 무라사키바라 아츠시와도 적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싫었다.
그들의 적이 되고 싶지 않았다.
쭉 친구로 있고 싶었다.
잃고 싶지 않았다-
“……바보 같은 걱정이군.”
그리고 미도리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뛰어나다는 것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3년 내내 네게 이기겠다고 이를 갈 필요도 없었지.”
“…….”
“불안해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아카시. 너는 뛰어나고, 대단해. 너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단계에선 없다는 것이다.”
“……그게 내게 패배를 가르쳐주겠다고 한 사람의 발언인가?”
“언젠가는 가르쳐 주겠다고 했었지. 그리고 그걸 위해 인사를 다하고 있고. 언젠가는 그 말이 진짜가 될 날이 올 거다.”
“뭐야, 말이 엉망진창이야. 모순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
“안다. 그리고 그 뒤에도 변하는 건 없을 거란 것도.”
“…….”
“약속하겠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옆에 있을 거다. 네가 패배를 겪든, 그렇지 않든. 네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네 최고의 라이벌로 언제나 옆에 있을 거다. 그러니 안심하라는 것이다. 나는 그리 쉽게 널 포기하지 않아.”
아아, 미도리마.
넌 그 말의 뜻을 알고 있는 건가?
네가 그런 존재인 이상, 난 언제나 너의 존재를 두려워하며 살 수밖에 없어. 내게는 절대적인 가치인 승리를 계속해서 위협해 올 너를.
“……그래, 미도리마.”
하지만- 난 그게 기쁘기도 해.
“너는 그런 사람이지.”
너라는 인간의 솔직함을, 성실함을 알기에, 기뻐. 네가 입 밖에 꺼낸 말을 반드시 지키는 존재라는 게 기뻐. 네가 평생 내 옆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
“아카시?”
“……미안, 잠시만…… 그대로 있어.”
넌 모를 거야. 내가 네 그런 말과 행동에 몇 번이고 구원받았는지. 절대적인 가치라고는 승리밖에 없던 내 인생에, 네 그 말이 얼마나 큰 구원이 되었는지.
“그냥…… 아무 말 말고 옆에 있어 줘.”
그런 너를 내가-
“……그래.”
얼마나 좋아하는지.
<S.아카시의 다섯 가지 그림자
FIVE SHADOW OF S.AKASHI>
Kuroko's Basuke Unofficial Fanbook#46.
미도리마 신타로 x 아카시 세이쥬로
A5 떡제 / 72p / 선입금 예약가 7,000원 / 일반 구매가 7,500원
*'아카시' 라는 이름을 가진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연작 단편집입니다.
*본작에 나오는 '아카시' 들은 저마다 모종의 정신의학적 병력이 있습니다. 주의.
* 샘플 - 이후 추가됩니다.
금요일. 또 다시 도어록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정말 어지간히 해 줬으면 하는군, 하고 생각하며, 당신은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렀다. 0.9.1.1. 도어록을 좀 더 복잡하게 설정할 수 있었더라면 그 앞에는 이 집의 주인이 아홉 살이 되던 해의 년도까지도 찍혔을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산출하는 것은 당신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신과 이 집 주인의 나이는 생일이 반 년 정도 차이가 날 뿐 어차피 같기 때문이다.
퇴근하는 길에 사 온 도시락 반찬을 부엌 식탁에 내려놓고, 당신은 밥솥을 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이 집을 찾아오는 가사 도우미가 지어놓고 갔을 것이 분명한 밥은, 보온 상태에서 얼마나 오래 보관되어 있었던 것인지 눅눅한 냄새가 났다. 물론 주걱으로 밥을 뜬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또 하루 종일 굶은 건가. 그러다가 쓰러지면 어떻게 하려고. 잠시 밥을 새로 할까 고민하다 당신은 곧 그것을 포기했다. 물을 제대로 맞출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는 묽은 죽을, 또 그 전에는 탄밥을 만든 적도 있었다.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편의점까지 뛰어가는 일은 사양하고 싶었다. 밥 짓기를 포기한 당신은 현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방의 문을 노크했다.
“아카시.”
당신의 부름에도 방 안에 있을 것이 분명한 이 집 주인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가 방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당신은 반응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사 온 반찬과 미리 지어 놓은 밥으로 간단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하루에 한 끼만 먹고서도 어떻게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끈질김이지만, 그로 인해 건강이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간의 단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뭔가 먹을 만한 것을 만들 수 있느냐면, 그것은 아니었다. 물을 맞추지 못하는 시점에서 이미 당연한 일이었지만, 인사를 다하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당신은 뜻밖에도 요리라는 한 가지 분야에서는 언제나 실패를 반복해 왔다. 언제나 레시피를 꼼꼼히 참고하고 계량까지 해 가며 만드는데도, 당신의 손에서는 늘 인간이 먹기엔 힘들어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고는 했다. 오빠는 절대 주방에 들어서지 마. 알았지? 올해 고등학생이 된 여동생은 눈을 흘겨 가며 당신에게 충고했고, 그런 모습을 보면 옆에서 어머니가 조용히 웃고는 했다. 물론 그런 괴멸적인 재주를 지닌 당신이어도 도우미가 만들어 놓고 간 국을 데우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기에, 초라한 저녁 식사는 그렇게 간단히 완성되었다. 당신은 앞치마를 벗어 의자 위에 걸쳐 놓고 다시 방문을 노크했다.
“아카시, 저녁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이다. 나와서 식사해라.”
그 말에, 절대 열릴 것 같지 않았던 문이 거짓말처럼 열렸다. 열린 문 틈 너머로 당신보다 20cm는 작은- 머리 위에 담요를 뒤집어쓴 청년이 얼굴을 내밀었다. 당신을 관찰하는 듯한 시선에 당신은 혀를 차며, 언제나처럼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잔소리를 했다. 잔소리를 듣기 싫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아카시는 마치 어린애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등 너머에서는 어른의 냄새가 났다. 지독할 정도의 장미향에 섞여 지독한 냄새가 났다. 당신은 그 냄새를 맡으며, 식사가 끝나면 한 차례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을 짐작했다.
“밥 먹자는 것이다.”
당신의 그 말에 아카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발끝에는 마치 핏빛을 연상시키는 페디큐어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 발끝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니 아카시의 손이 담요 밖으로 튀어나와 당신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밥 먹자면서. 그렇게 말하는 듯한 아카시의 손끝도 발끝과 똑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피에 물든 손처럼.
“……미안하다. 생각할 게 좀 있어서.”
당신의 사과에 아카시는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이고 당신을 지나쳐 식탁으로 향했다. 허벅지 근처까지 올라온 짧은 잠옷은 하늘하늘한 천으로 되어 있어서, 어딜 봐도 여성의 것임을 훤히 알 수 있는 옷이었다.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쓰고 있는 담요를 벗기면, 과거 운동을 한 적이 있던 단단한 몸 때문에 도저히 잠기지 않는 상의가 보일 것이었다. 아카시를 식탁 앞에 앉혀 놓고, 담요를 어깨까지 내려 도로 단단히 둘러 준 당신은 아카시의 가운데에 앉아 제 숟가락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당신의 중얼거림에 아카시도 간신히 수저를 들었다. 그의 손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역시나 두부 반찬이다. 하루 종일 굶고 있었다면 위가 줄어들 대로 줄어들었을 테니, 그나마 부담이 없는 두부를 가장 먼저 선택하는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아카시가 먹는 것이 대부분 두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래서야 기껏 생선구이까지 사 온 보람이 없다. 당신은 당신 몫의 밥을 입에 넣기도 전에 아카시를 위해 생선살을 발라 그의 밥그릇 위에 놓아주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는 것이다. 골고루 먹지 않으면 몸에 좋지 않아.”
지극히 당연한 충고에 당신을 향했던 샐쭉한 시선이 다시 밥그릇을 향했다. 살점이 놓인 밥을 그대로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었지만,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는 것이 바로 보였다. 제대로 씹어라. 그렇게 말하며 놓아 준 두 번째 생선살은 열 번 정도 씹어 삼켰다. 만약 당신에게 상대의 모든 동작을 파악하고 그 다음 행동까지 읽어낼 수 있는 신의 눈이 있었다면 아카시가 이빨을 몇 번 정도 움직였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당신에게 그런 능력은 없었다. 오히려 당신의 시력은 학생 때보다 점점 떨어지는 중이었다. 안경을 벗으면 눈앞에 있는 것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괴상한 시력으로 추락한 것이다.
“먹으면서 들어라.”
당신이 그런 말로 입을 열자 아카시가 밥을 씹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먹으면서 들으라니까. 고기감자조림을 입에 넣으며 당신은 생각했다. 눈앞의 아카시는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한동안 여기 못 오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당신이 꺼내 놓은 용건에 아카시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 표정에서 아카시의 지금 심정이 어떤지는 능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당신은 그것을 못 본 체 하고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는 병원에서 사정을 봐 줬지만, 점점 환자가 늘어나서 말이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환자들도 같이 늘어났고…….”
“…….”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금처럼 도쿄와 교토를 오가는 생활이 힘들어진다는 의미다.”
“……!”
그 순간 덜컹, 하고 식탁이 흔들렸다. 아카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당신의 옷깃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아카시의 국그릇도 살짝 흔들려, 국이 조금 흘러넘쳤다. 당신은 제 옷깃을 잡은 아카시의 손을 떼어놓고 식탁 위의 냅킨으로 흘러넘친 국을 닦으려 했지만 아카시는 다시 당신에게 손을 뻗어 끈질기게 당신의 옷깃을 붙잡아 왔다.
“아카시. 내 얘긴 아직 안 끝났다는 것이다.”
“……!”
점잖은 목소리로 타일렀지만 아카시는 막무가내였다. 당신의 옷깃을 세게 붙잡은 아카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찌나 격렬하게 흔들었던지, 그 바람에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담요가 흘러내렸다. 훤히 드러난 아카시의 상반신은 당신이 예상했던 대로 절반도 가려져 있지 않았다. 어차피 아카시에게 이 옷은 ‘걸치고’ 있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니, 굳이 제대로 입을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다르다. 당신은 인상을 찌푸린 채 아카시의 손을 다소 거칠게 떼어 놓았다.
“식사 도중에 할 이야기가 아니었군. 일단 식사를 끝내고 얘기하지.”
당신의 그 말에 아카시는 입을 뻐끔거리며 계속해서 뭔가를 말하려 하고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그 목소리가 당신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당신은 후, 하고 짧게 한숨을 쉬고 냅킨으로 아카시의 국을 닦아준 다음, 아직 허공에 떠 있는 아카시의 손에 억지로 수저를 쥐어주었다.
“우선 식사를 끝내라는 것이다. 네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난 아무 말도 안 할 거니까.”
화요일,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며 당신은 생각했다. 오늘이 7월 20일이니까, 앞으로 다섯 달 남았군. 한 달을 30일로 쳐서 계산해도 150일이다. 이걸 어떻게 납득시킨다. 그런 고민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 당신은 거실 한가운데 누워 자고 있는 소년을 발견했다. 그림책을 읽다 깜박 잠들어버린 모양인지, 주변에는 온갖 그림책이 가득했다. 그것이 일반 그림책과 다른 점은 전부 원어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혼자서는 해석할 수 없는 단어도 있었는지 근처에 외국어 사전도 있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전부 당신의 방 서재에 꽂혀 있던 것들이었다. 서재에 있는 책은 마음대로 읽어도 된다고 했지만, 제가 본가에서 가져온 동화책 외엔 손대지 않는 것이 과연 아카시답다는 생각을 했다.
“세이.”
깊게 잠에 빠진 그 어깨를 흔들자 천천히 아카시가 눈을 떴다. 아직 잠이 덜 깬 듯 멍한 눈동자 한가득 당신의 모습을 담고 잠시 눈을 깜박이던 아카시는, 곧 저를 깨운 것이 당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선생님, 어서 오세요.”
웃으면서 당신의 목에 매달리는 아카시의 무게를 한 팔로 겨우 지탱하며 당신은 소년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다녀왔다는 것이다. 다정하게 그런 말을 속삭이자 아카시가 귓가에서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차례의 포옹 뒤 떨어지자 생긋 웃는 아카시의 얼굴에 홍조가 가득한 것이 보였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소년의 볼에 입술을 맞춘 당신은 아카시의 등을 토닥이며 그를 제 품에서 떼어놓았다. 그것이 아쉽다는 듯 잠시 당신을 바라보던 아카시는 당신이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기분 좋은 듯 웃었다.
“미안하다. 너무 늦었지? 저녁 먹자. 오늘은 어제 우리 어머니가 도쿄에서 보내 주신 반찬들이 있다는 것이다. 세이하고 같이 먹으려고 가져왔지.”
“정말요? 신난다! 선생님 어머니 요리는 정말 맛있어요. 다음에 전화로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래, 오늘 밤에 전화해 보자는 것이다. 씻고 와서 저녁 차릴 테니까, 책 정리해 두고.”
“아…… 죄송해요, 집을 어질러서.”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살짝 붉히고 아카시는 제 주변에 널린 동화책들을 황급히 끌어 모았다. 책을 안고 종종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아카시의 뒷모습을 살짝 바라본 뒤 당신은 넥타이를 풀었다. 후우. 어머니 이야기를 꺼낸 시점에서 전신을 지배했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소년- ‘아카시 세이’에게 ‘어머니’라는 단어는 일종의 금기어다. 딱히 그 단어를 듣는다고 아이가 불안해하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단어와 함께 끌려나올지도 모르는 화제는 당신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문제의 날이 약 150일이나 남았으니 말이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시간이 많은 게 당일보다 나을지도…….’
“선생님…… 많이 피곤해요?”
“응?”
어느새 제 옆에 다가와 있는 아카시의 모습에 당신은 화들짝 놀랐다.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아카시가 책을 정리하고 방에서 나온 모양이었다. 걱정스레 자신의 무릎 위에 손을 얹고 앉은 아카시를 보며 당신은 아차 싶어 황급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선생님은 괜찮다는 것이다. 의사는 원래 바쁜 직업이니까.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피곤에 물든 얼굴 근육을 억지로 움직여 미소 지어 주었다. 물론 아카시는 그런 미소로도 충분했는지 헤헷, 하고 웃은 뒤 식탁으로 뛰어갔다.
“저녁은 제가 차릴 테니까 선생님은 씻고 오세요! 수건은 욕실에 준비해 뒀어요.”
“선생님을 위해 준비해 둔 거냐?”
“응! 선생님이 언제 들어와도 괜찮도록, 빨래 끝난 걸 걸어뒀어요.”
“……착한 아이구나, 세이는.”
“헤헷, 전 그 칭찬이 제일 좋아요.”
“그래…… 그렇겠지.”
“그런데 목욕물은 못 받았어요. 보일러 조절하는 법을 잘 몰라서…….”
“그럼 밥 먹고 선생님이랑 같이 해 볼까?”
“네!”
아홉 살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원서로 된 동화책을 읽는 것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아이는 무척 영리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은 이 아이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당신은 변함없는 아이의 영리함에 순수하게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아카시의 관심을 문제의 화제에서 돌려놓을 만한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순수하지 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오늘은 아이에게 쓸데없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간단히 세수만 마치고 나왔을 때는 아카시가 당신이 가져온 반찬을 그릇에 정성스레 담아 식탁에 전부 차려둔 뒤였다. 평소에는 가사 도우미가 있어 부엌에 들어갈 일이 없어도 아카시는 그릇이 놓인 장소를 모두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부엌에는 일주일에 한 번만 들어가는데 대단하다고 칭찬했을 때 아카시는 당연히 전부 기억하고 있다면서 자랑스레 웃었다. 물론 그 미소에 아홉 살짜리 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우울함이라는 불순물이 섞여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애써 무시하기도 했었다. 물론 아카시는 당신의 그런 행동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테지만.
“잘 먹겠습니다!”
“그래, 천천히 먹으라는 것이다.”
“아, 두부조림도 있다. 저 이거 좋아해요.”
“알고 있지. 일부러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럼 감사하다고 꼭 말해야겠네. 그런데 몇 시쯤에 걸면 될까요? 저 열 시에는 꼭 자야 하는데…….”
“그럼 아홉 시에는 전화하게 해 주마.”
“네!”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아카시는 능숙하게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밥을 적당량 덜어 입에 넣고 열 번 이상 꼭꼭 씹어 삼키는데다 자신의 접시에 덜어 놓은 음식만 정갈하게 입에 넣는 행동거지 하나하나는 어딜 봐도 군더더기 없는 식사 매너였다. 그것은 이 소년이 당신과 한 집에서 살게 되기 전까지 엄격하게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언제 어디에서, 그 누구와 식사하더라도 트집을 잡히지 않기 위해 소년이 익혀야만 했던 매너. 소년의 그런 모습을 보면 당신은 본의 아니게 당신의 어린 시절과 소년을 비교하고는 했다. 당신 역시 부모님에게 식사 매너는 빈틈없이 배웠지만, 그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음식을 좀 더 맛있게 즐기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예절이었기 때문에 배웠던 것이었다. 그 증거로 당신이 젓가락질을 서투르게 하거나, 음식을 살짝 흘리는 일이 벌어져도 부모님은 웃음과 함께 그것을 교정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눈앞의 소년은 달랐다. 만약 소년이 어린 날의 당신과 같은 실수를 저질렀더라면, 소년에게 날아오는 것은 매서운 호통 소리였으리라.
수요일, 집 앞에 선 당신은 도어록의 비밀번호 대신 초인종을 눌렀다. 물론 당신은 이 집의 도어록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집의 주인이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걸 당신의 코앞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부끄럽네요. 이런 거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붉힌 그녀는 당신을 슬쩍 바라보았다가, 당신이 짓고 있는 흐뭇한 미소에 이번에는 귀까지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돌렸었다. 그러나 그렇게 알아낸 비밀번호를, 당신은 한 번도 눌러 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 것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왜 안 나오지?’
혹시 초인종 소리를 못 들은 건 아닐까. 당신은 의문을 느끼며 다시 초인종을 눌러 보았지만, 집 안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에 귀를 대어보고 보일 리 없는 구멍에 눈을 갖다 대는 수상한 행동을 하고 나서야 당신은 핸드폰의 존재를 떠올렸다. 전화를 해 보면 되는 것 아닌가. 당신은 단축번호 1번을 눌러 그녀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당히 오래 신호가 간 뒤에서야 여보세요? 하는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이카, 지금 밖에 있는 건가?”
“어머, 죄송해요. 잠시 식재료를 사러 갔다가…… 혹시 집에 오셨어요?”
“그래. 지금 어디지?”
“엘리베이터 앞이에요. 금방 올라갈게요.”
땡, 하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잠시 문에 기대서서 기다리고 있자니, 복도 끝에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황급히 이쪽으로 뛰어오는 구두 소리와 함께 양손에 비닐봉지를 든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피스 끝자락을 휘날리며 당신에게 뛰어온 아카시 세이카는 헉, 헉, 하고 잠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일을 일찍 정리했다는 것이다. 빨리 만나고 싶어서.”
“또 그런다…… 어차피 수술이 취소됐거나, 뭐 그런 거겠죠?”
“진심이다만. 믿어 주지 않는군.”
“신타로 씨가 하는 말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알기 어려우니까 그렇죠.”
핀잔을 준 그녀는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렀다. 0, 7, 0, 7. 얼마 전에 지나버린 당신의 생일 네 자리를 누른 그녀는 당신이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갔고, 비닐봉지를 현관에 내려놓는 소리가 들린 이후 다시 문을 열고 당신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신타로 씨.”
“……다녀왔다는 것이다.”
당신이 바라는 것을 정확히 읽어낸 그녀가 기특해 몸을 숙였다. 땀으로 살짝 젖어 있는 이마에 입술을 맞추자 세이카는 부끄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황급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완벽할 정도로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당신이 집에 오는 날을 맞춰 아침부터 이 집을 쓸고 닦았을 사랑스러운 여인에게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여인은 봉지 안에 들어있던 것을 식탁 위에 꺼내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찍 오면 온다고 말이라도 해 줄 것이지. 좀 더 빨리 준비했을 텐데.”
“괜찮다는 것이다. 갓 만든 요리를 먹을 수 있으니 내겐 이득이지.”
“너무 그러지 마세요. 맛있게는 못 만들어요. 아직 요리책이 없으면 안 되는 수준인걸요.”
“굳이 완벽하게 준비할 건 없다는 것이다. 난 네가 만들어준 거라면 뭐든 좋으니까.”
낯간지럽기 그지없는 대사를 던지며 당신은 가방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냄비에 물을 받는 세이카를 뒤에서 끌어안자 어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씻기부터 하세요. 요리에 집중할 수가 없잖아요. 투덜대는 그녀의 말대로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간 당신은 넥타이를 헐겁게 풀고 소파 위에 앉았다. 후우. 지친 몸에서 절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 당신을 부엌에서 흘깃 쳐다보던 그녀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어 왔다.
“많이 피곤하세요? 먼저 차라도 내올까요?”
“아니…… 괜찮다는 것이다. 조금 쉬면 편해질 거야.”
“일이 일찍 끝났으면 좀 주무시지 않고…… 아, 물론 바로 절 만나러 와 주신 건 기뻐요. 무척 기뻐요. 신타로 씨한테 전화가 왔을 때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는걸요.”
황급히 변명의 말을 지어내는 세이카의 얼굴은 분명 붉게 달아올라 있을 것이었다. 허리 아래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과 똑같은 색. 그 얼굴을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풋, 하고 웃자 그 소리를 들은 세이카가 자연스레 눈을 흘겼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하는 핀잔의 눈빛이었다. 살짝 토라진 얼굴로 다시 냄비로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간 당신은 주머니에서 머리끈을 꺼냈다. 요리하는 데 방해가 되겠군. 그렇게 말하며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머리를 한데 모은 당신은 끈을 꽉 조이지 않게 조심하며 그녀의 머리를 깔끔하게 묶어주었다.
“고마워요.”
“……귀가 새빨간데. 감기라도 걸린 건가?”
“나 참…… 일부러 그러는 거죠?”
“들켰군.”
“방해하지 말고 얼른 씻어요. ……이대론 요릴 못하겠어요.”
그 말대로, 도마 위에 야채를 올려놓고 있는 그녀의 손이 가볍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이런 생활을 하게 된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녀는 당신이 근처에 있는 것에 익숙해지지 못한 모양이었다. 만난다고 해도 일주일에 한 번뿐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대체 언제까지 자신의 존재에 긴장감을 느낄 것인지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슬슬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될 텐데. 그녀는 물론이거니와, 당신도 또한.
토요일 아침, 편의점에서 돌아온 당신은 도어록을 보고 잠시 고민했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당신이 어제 이 집에 왔을 때 눌렀던 번호와 다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새 비밀번호. 이 집의 주인은 매일 아침 집의 비밀번호를 새로 바꾼다. 누군가가 이 집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도록. 그가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 놓은 자신만의 공간을 훼손하지 않도록. 그것은 그와 가장 가까운 사이이고, 이 집의 비밀번호를 알 자격이 있는 유일한 상대인 당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게다가 그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그 작업을 한다. 어제와 비밀번호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그리고 그 날짜가 하필이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짜라는 걸 알면, 내색은 하지 않겠지만 그는 분명 혼란스러워할 것이었다. 잠시 고민한 당신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어, 대충 머릿속에 생각난 숫자를 아무렇게나 찍었다. 그리고 깨어난 그에게 어젯밤 네가 이 숫자로 설정했다고 말해 줄 생각이었다. 그가 그걸 얼마나 믿을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위화감을 알아차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집으로 무사히 들어온 당신은 사 온 물건을 거실 서랍장에 숨기고 당신이 쓰는 방문을 노크했다.
“아카시,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대답은 없었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당신의 침대 위에서 당신의 파자마를 입은 채 아직도 깊이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카시.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당신은 아카시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카시, 일어나라는 것이다. 벌써 아침이야. 아카시. 그는 어젯밤 열두 시가 되기 전에 잠들었다. 물론 당신은 아카시가 잠이 든 뒤에도 한참을 깨어 있어야 했다. 당신에게는 어젯밤 있었던 일의 뒤처리와, 아카시가 위화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집을 정리해 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신은 그럴 때마다 아카시가 깊게 잠들면 쉽게 깨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도하고는 했다.
지금 시간이 아침 여덟 시이니 아카시는 근 아홉 시간은 잔 셈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아카시 세이쥬로의 평균 수면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다. 당신은 아카시에게 한 치의 위화감도 느끼게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아카시는 당신이 어깨를 흔들기 시작한 지 5분도 안 되어 천천히 눈을 떴다. 당신을 향한 눈동자는 양쪽 모두 붉은색을 띠고 있었지만 당신은 잠시 긴장한 채 아카시의 입에서 흘러나올 첫 마디를 기다렸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오늘 당신을 뭐라고 부를까. 그리고 아카시가 천천히 입을 열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당신을 불렀다.
“아…… 미도리마…….”
이번 주는 ‘이쪽’이 먼저인가. 당신은 상황을 파악하는 즉시 아카시에게 가볍게 키스했다.
“좋은 아침이라는 것이다, 아카시.”
“지금 몇 시야……?”
“여덟 시다. 어제 어지간히 피곤했나 보군.”
“아…… 너무 잤네. 미안, 금방 일어날게.”
“미안해 할 것 없다는 것이다. 천천히 일어나도록 해. 아침은 빵으로 괜찮겠지?”
“으응…… 아, 수프가 남았던가……?”
“걱정 마라. 새로 사왔으니까.”
“시판되는 수프는 맛이 없는데.”
“오늘 하루만 참으란 것이다.”
잠에서 덜 깬 탓인지 태연하게 어리광을 부리는 연인에게 미소와 함께 한 번 더 키스하고 당신은 침대 가까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잔뜩 긴장해 있던 몸에 힘이 빠졌다. 아카시는 자신이 평소보다 더 오래 잔 이유는 물론이오, 거기서 오는 위화감조차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은 잠이 덜 깨서 그럴 테니, 깨닫기 전에 계속 일을 시켜서 생각할 겨를도 없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부엌으로 나온 당신은 토스트기에 식빵을 넣고 찬장을 열어 접시를 꺼냈다. 한 개 정도 깨트리면 거기 정신이 팔려서 딴 생각은 못 하겠지. 한 번 결정하면 당신의 행동은 빨라진다. 아카시가 졸린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오는 것과 거의 동시에 당신은 일부러 들고 있던 접시를 놓쳤다. 챙그랑, 하는 소리에 예상대로 아카시가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 당신에게 뛰어왔다.
“괜찮아?!”
“아, 괜찮다는 것이다. 가까이 오지 마라. 슬리퍼도 안 신고서. 다칠라.”
“너야말로 손 베지 않게 조심해. 의사가 손을 다치면 어떡하려고 그래. 아, 됐으니까 거기 가만히 있어. 내가 치울 테니까.”
황급히 슬리퍼를 신고 온 아카시는 접시 조각을 주워 모으는 당신의 앞에 청소기를 들이댔다. 당신의 예상대로 아카시는 이 뜻밖의 상황에 완전히 잠이 깬 것은 물론이오, 다른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게 된 모양이었다. 남은 것은 조심 좀 하지 그랬어, 하고 낯선 잔소리를 하면서 청소기를 움직이는 아카시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미도리마는 부엌에만 들어오면 사람이 달라지는 것 같다니까. 다음부턴 뭐 꺼내기 전에 날 불러.”
“새로 사야겠군.”
“괜찮아. 접시야 많은데 뭐. 그것보다 손은 괜찮아? 어디 베거나 하진 않았어?”
“그 정도까지 바보는 아니라는 것이다.”
“후후, 그럼 됐어. 차 좀 끓여 줄래?”
“알았다.”
당신의 대답에 아카시는 피식 웃고 청소기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러 갔다. 어떻게든 넘긴 모양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당신은 찻주전자를 불 위에 올리고 다른 접시를 꺼냈다. 물론 이번에는 무사히 식탁까지 접시를 가져다 둘 수 있었다. 아카시는 이제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 차를 타는 당신의 옆에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카시 세이쥬로가 혼자 살게 된 지도 어언 4년째. 그는 이제 웬만한 요리는 전부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일주일에 이틀밖에 이 집에 오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서다. 아카시가 결코 내색하지는 않을 그 사실이 당신은 기쁘면서도 슬펐다. 아카시 세이쥬로의 당신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면서도, 그런 상대에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미도리마는 소스 뿌려 먹지? 소금은 조금만 칠게.”
찻잔을 내려놓은 당신은 그대로, 그런 말을 하며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는 아카시의 뒤로 다가가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미도리마? 의아함 가득한 목소리로 당신을 부르는 아카시는 당신이 갑자기 왜 이런 일을 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아침부터 연인에게 끌어안긴 데 대한 수줍음을 얼굴에 가득 담고 있었다. 그 사랑스러운 얼굴에 살짝 시선을 주었다가, 당신은 아카시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미도리마, 왜 그래? 괜찮아?”
“그냥…… 이러고 싶다는 것이다.”
“빨리 식사하고 좀 쉬어 둬. 어젯밤엔 대체 언제 온 거야?”
“한 시쯤…….”
“그럼 얼마 못 잤겠네. 이따가 낮잠이라도 좀 잘래?”
“……네가 무릎을 빌려준다면야.”
“그거야, 뭐. 얼마든지. 그것보다 네가 그런 부탁을 다 하고. 많이 피곤했나 봐.”
아이를 달래듯 토닥토닥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카시가 가만히 당신의 볼에 입술을 맞추었다. 착하지, 가서 밥 먹자. 그렇게 말하는 듯한 손길과 입술에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카시에게서 떨어졌다. 양팔에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당신은 이 일주일 동안 저 몸을 끌어안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따 정말로 아카시가 무릎을 빌려준다면, 참지 못하고 그를 끌어안을 것만 같았다.
‘나도 지쳤나보군…….’
피식 웃고 자리에 앉은 당신은 아카시가 가운데에 샐러드와 스크램블 에그를 놓는 것을 보고 포크를 집었다. 알맞게 구워진 빵 위에 버터만 얇게 펴 바르고 입에 넣자 와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물론 당신의 맞은편에서 천천히 식사를 시작하는 아카시 역시 똑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한 숨 자고 나면 뭐 할래? 오늘은 간만에 나도 시간이 나는데.”
“글쎄…… 우선 깨진 접시부터 사러 갈까?”
“그건 신경 안 써도 된다니까.”
“내가 너하고 외출하고 싶다는 뜻이다.”
“후후, 그럼 그냥 그렇게 말해. 아, 말 나온 김에 드라이브나 갈까?”
“그거 좋지. 마침 점심 특선으로 탕두부를 내어놓는 가게를 알아뒀다는 것이다. 거기서 점심을 먹는 건 어떨까.”
“완벽한걸.”
“저녁 식사는 어떡하지?”
“왜 아까부터 먹는 이야기만 해? 그렇게 배고팠어?”
그래, 고팠다.
하지만 당신이 느끼고 있는 허기는 위가 비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눈앞의 존재- 아카시 세이쥬로를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당신이 그 사실을 말하면 아카시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었다. 이상하다, 나는 미도리마를 오랜 시간 못 만났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드는데. 혹시라도 그런 말이 아카시의 입에서 나오면 큰일이었다. 그 생각에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전부 터놓고 싶은 충동을 애써 가라앉히며 당신은 식사를 계속했다. 맞은편의 아카시는 마찬가지로 식사를 하면서, 간혹 왼쪽 손목을 긁고는 했다. 여기가 왜 이렇게 가려운지 모르겠어. 뭔가 상처 같은 게 있는데. 처음 아카시가 그런 의문을 제기했을 때 당신은 대수롭지 않게 그 사실을 넘겼다. 어디 책에라도 베었겠지. 아카시는 그 말로 납득한 듯 보였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흉터에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럴 것이다. 이 아카시 세이쥬로는 그것이 대체 어디서 생겼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신은 그 흉터가 생긴 날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당신이 도쿄의 병원으로 옮겨 가게 되었음을 아카시에게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원래 둘이서 함께 살던 이 집에 당신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찾아오지 못하게 될 거라고 선언하던 날.
당신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일요일 아침 당신은 부엌에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에 눈을 떴다. 알람이 울리는 것도 듣지 못한 채 정신없이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밖으로 나와 보자, 어느새 아카시가 앞치마를 두른 채 부엌에 서 있었다. 아카시. 조심스레 그를 불러 보았다. 당신의 목소리에 반응한 아카시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당신을 향해 웃어주거나 잘 잤느냐는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그저 당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다시 끓고 있는 국 냄비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아, 당신은 빠른 발걸음으로 아카시에게 다가가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갑자기 왜 이래?”
“너…… 아카시냐?”
“그럼, 누구로 보이는데?”
“장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장난 아니야. 깼으면 우선 씻고 오도록. 땀 냄새가 나니까.”
“…….”
“내 말 안 들려?”
“넌…… 어느 쪽이지?”
“보면 몰라? ‘나(僕)’잖아.”
그 호칭을 듣고 난 뒤에야 당신은 아카시의 손을 놓아줄 수 있었다. 이 호칭이 반갑게 들리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그리고 대놓고 안도의 표정을 짓는 당신을 보고 아카시는 짜증이 난 듯, 가만히 발을 뻗어 당신의 발목을 걷어찼다. 당신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슬리퍼 너머이기는 했어도 뼈를 정통으로 걷어차인 덕분에 묵직한 고통이 남았다. 눈물까지 고인 채 저를 올려다보는 당신의 눈을 보고 나서야 아카시는 쿡쿡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팠어?”
“아카시이…….”
“신타로가 아침부터 이상한 소릴 하니까 그렇잖아. 이쪽은 어제 밤새 시달려서 잠을 설쳤는데, 태평하게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고.”
“그, 그런 적 없다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정말 그랬어. 얼굴에 낙서나 해 줄까 하다가 참은 줄 알아. 아침부터 얄미운 짓이나 하고…… 벌 받은 거야.”
“…….”
“불만은 아침 먹으면서 들어줄 테니까 어서 씻으러 가도록. 땀 냄새가 심하다는 건 정말이니까.”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밥솥을 향해 몸을 돌리는 아카시를, 당신은 그 뒤에도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다르지만, 저쪽도 확실히 아카시 세이쥬로다. 걱정할 것 없다. 당신의 아카시 세이쥬로는, 적어도 이 주말 내내 당신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었다. 몇 번이고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고 나서야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목욕탕에는 아카시가 준비해 둔 듯한 속옷과 수건, 갈아입을 옷이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잠을 설쳤다는 아카시의 말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또 무슨 보상을 요구해 올까. 평화로운 걱정에 빠진 채 당신은 물이 쏟아지는 샤워기 아래 섰다. 지난밤 정사의 흔적을 깨끗이 흘려보낸 뒤에 밖으로 나오자, 아침 식사 준비를 마친 아카시가 식탁에 턱을 괸 채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졸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하다. 아래로 떨궈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아카시를 마주하고 앉아, 당신은 먼저 수저를 들었다. 웬일로 아카시 몫의 아침은 차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입에 넣은 밥에서 단맛이 났다. 아카시가 퍼뜩 눈을 뜬 것은 당신이 그 얼굴을 반찬 삼아 밥을 반 이상 위에 집어넣었을 때였다.
“뭐야…… 혼자 먹는 거야? 왜 안 깨웠어?”
“꽤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네 조는 얼굴.”
“한 번 더 걷어차이고 싶은 건가?”
“사양한다는 것이다. 그것보다, 넌 왜 식사하지 않고.”
“이따가 속이 불편해질 장소에 가게 될 테니까.”
“…….”
“……왜 ‘그런 말 처음 들었다’는 표정으로 보는 거야?”
“그야…… 지금 처음 들었으니까.”
“저번 주에 말했었잖아? 오늘 아버지 대리로 지인의 약혼파티에 가야 하니까 정장 챙겨오라고.”
“…….”
“……설마, 잊어버린 거야?”
“미…… 안하다는 것이다. 이번 주엔 일이 너무 많아서.”
나 참, 하고 한숨을 내쉬는 아카시에게는 미안한 말이었지만, 정말로 잊어버리고 있었다. 올해 초 아카시와 함께 산 당신의 스케줄러에는 이 일정이 제대로 적혀 있었을 테지만, 그것을 증명해 줄 스케줄러는 도쿄의 진료실에 남아 있었다. 덕분에 당신은 남은 밥을 먹는 내내 정신을 어디에 빼놓고 다니냐는 요지의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할 수 없지. 레오에게 전화해보지. 그 사람 의상실이라면 네 사이즈에 맞는 정장도 있을 거고.”
“미안하다는 것이다.”
“됐어. 바빴을 테니까 어쩔 수 없잖아. 데이트라고 쳐두면 돼. 대신 설거지는 네가 하도록.”
당신은 묵묵히 그릇을 들고 개수대로 향했다. 수도꼭지를 돌리자마자 쏟아지는 물소리 너머로 아카시가 미부치 레오에게 전화를 거는 소리가 들렸다. 아, 레오? 나야. 오랜만이네. 갑작스런 부탁이라 미안한데, 정장 한 벌만 빌려줄 수 있어? 굳이 그렇게 부탁하지 않아도 미부치라면 아카시에게 무릎을 꿇고 정장을 바칠 것이었다. 물론 입는 상대가 아카시 세이쥬로가 아닌 당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인상 정도는 찌푸리겠지만.
“신타로, 열 시에 나갈 거야.”
“알았다는 것이다.”
“난 먼저 옷 갈아입을 테니까, 그거 정리 끝나면 불러.”
“도와줄까?”
“불쾌한데. 옷 정도는 혼자 갈아입을 수 있어. 아니면, 설마 내가 정장을 입는 방법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짐승 앞에서 옷 갈아입을 생각은 없어.”
툭 내던지고 아카시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하고 세게 닫힌 문을 보며 당신은 아카시가 어제의 일을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럴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아카시는 당신이 자신의 앞에서 그렇게 무너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제야 어제의 일이 후회되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그렇게 조심하고 있었는데. 일주일 만에 만나는 아카시의 정상적인 모습을 앞에 두었을 때, 그를 언젠가 떠나보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를 탐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었다. 어제의 추한 모습을 떠올리자 손이 미끄러졌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접시를 향해 황급히 발을 뻗었다. 아카시가 걷어찬 부분에 두 번째의 충격이 가해진 덕분에 접시는 깨지지 않을 수 있었지만, 샤워를 하면서 간신히 잊었던 고통이 다시 되살아나 당신을 괴롭혔다. 끄윽. 발목을 붙잡고 잠시 신음을 흘린 당신은 아카시가 나오기 전에 접시를 들고 일어섰다. 수도꼭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에 거품이 깔끔히 씻겨 내려간다.
아카시가 그렇게 되기 전에, 자신의 감정도 씻어 보낼 수 있었더라면.
‘……한심하군. 이미 일어나 버린 일에 후회를 하다니.’
깨끗해진 접시를 개수대에 올려놓았을 때 문이 열렸다. 신타로, 이 옷 괜찮아? 그렇게 묻는 아카시는 어느새 새로 맞춘 듯한 맞춤형 정장을 곱게 차려입은 뒤였다. 넥타이 색이 좀 튀나. 중얼거리는 아카시에게 다가가, 당신은 그의 어깨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옷 흐트러져. 불만스레 중얼거렸지만, 아카시는 당신을 밀어내지 않았다.
당신에게는 그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선입금 예약 마감은 7월 7일(화) 밤 12시이며 입금 마감일은 7월 8일입니다.
수량조사 마감은 8일 아침까지 연장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천사같은 히님&레아님의 위탁 협력으로 인해
작년 12월 서울코믹월드에서 판매되었던 녹ts적 구간
<사랑, 해도 될까요?>
재고전도 라쿠잔 온리에서 진행합니다!
A5 / 64p / 6,000원 / R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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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책은 10부 이하의 극소량입니다. 구매하시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
*구간은 딱히 수량조사, 예약 받지 않습니다.
***헷갈리기 쉬운 부스 위치 숙지해주세요***
신간 / 녹적 트윈지 : 개 02 '아카시의 남자들'
녹ts적 구간 : 벽 07 '라쿠잔 우승 트로피 삽니다@@@선제시@@@'
행사 당일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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